검색 공유하기

알맹이 빠진 그린뉴딜에 꼭 필요한 것은 | 정책

  • 이정호
  • 2020-07-01 14:01
  • 6,658회

3년 전 느닷없이 등장해 선풍적 인기를 누렸지만 내용이 뭔지 아무도 모르는 ‘4차 산업혁명’처럼 최근 ‘그린뉴딜’이란 말이 풍년이다.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5월7일 첫 언급하면서 그린뉴딜은 정부가 지난달 1일 발표한 ‘하반기 경제정책 방향’에도 버젓이 이름을 올렸다. 12.9조 원을 쏟아 일자리 13.3만 개를 창출한다는 뜬구름과 함께.


심지어 산악열차를 개통해 ‘대관령을 한국의 융프라우로 만들겠다’는 강원도의 토건 공약도 그린뉴딜이란 탈을 뒤집어썼다.(한국일보 6월6일) 낡은 컴퓨터 교체도 그린뉴딜이란 이름표를 붙인 채 떠돈다.


집권당 코로나19국난극복위원회와 한국형뉴딜TF(단장 김성환 의원)가 지난달 10일 국회에서 공동주최한 ‘기후위기 극복 – 탄소제로시대를 위한 그린뉴딜 토론회’엔 GS와 현대차, 포스코 등 대기업 임원들이 대거 토론자로 등장했다. 이날 토론회 포스터엔 ‘제러미 리프킨 기조연설’이란 글자가 강조점을 박은 채 선명했다. 한국 전문가주의의 부끄러운 자화상을 보는 듯했다.


대통령 말 한마디에 내용도 모른채 정책을 쏟아내는 관료들 손에 쥐어진 그린뉴딜이란 위험한 칼날이 어디로 향할지 두렵다. 참세상연구소가 지난달 18일 이런 혼돈의 ‘그린뉴딜’을 논하며 대안을 토론하는 집담회를 열었다.

 

 

[사진1] 참세상연구소가 지난달 18일 ‘그린뉴딜, 기후위기 대안인가’라는 주제의 기후정의포럼 집담회를 열었다. ⓒ이정호

 

이날 발제를 맡은 김선철 기후위기비상행동 집행위원은 “미국에서 그린뉴딜은 ‘일자리’나 ‘사회정의’, ‘노동’ 이슈와 연결돼 있는데 한국은 그렇지 못한 채 제대로 된 논의도 없이 상층 전문가 중심으로 논의만 과열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김선철 위원은 “정부와 여당이 과거에 나온 개발정책을 재탕해 그린뉴딜에 마구 갖다 붙이는 지경”이라고 비판했다. 김 위원은 대관령에 산악열차를 깔아 산악관광을 활성화하겠다는 강원도의 토건 사업도 그린뉴딜로 둔갑해 언론에 오르내린다고 지적했다. 


미국 민주사회주의자(DSA) 회원인 알렉산드리아 오카시오-코르테즈(AOC) 미 하원의원이 지난해 2월 하원에 제출한 ‘그린뉴딜에 관한 하원 결의안’에 따르면 “그린뉴딜은 최전선 약자와 노조, 노동자 협동조합, 시민사회단체들, 학계, 기업을 포함하는 투명하고 포괄적인 협의, 협력, 파트너십에 의해 진행해야 한다.” 

 

 

최전선 약자 빠진채 ‘그린뉴딜’ 말만 풍년

 

김 위원은 “한국에서 지금 논의되는 그린뉴딜은 최전선 약자는커녕 매우 제한된 공론화 과정 속에 정부 주도로 진행 중”이라고 했다. 한국에서 그린뉴딜 논의는 정부가 주도하는 제한적 공론화 속에 뾰족한 참여 주체도 없는 형편이다. 정당, 지방정부, 기업 등 상층 전문가가 주도하는 논의는 탄소배출 목표나 기후정의, 정의로운 에너지 전환은 빠진 채 ‘정책 브랜딩’에만 치중한다. 무엇보다도 그린뉴딜의 기반인 노동자, 농민, 지역주민, 여성, 장애인, 이주민, 소수자 등이 빠진 채 진행되는 게 가장 큰 문제다. 


김 위원은 캐나다 오샤와 GM공장 사례도 소개했다. 오샤와 공장은 80년대 2만 3000명을 고용하는 캐나다 최대 자동차 공장이었는데 미국 발 금융위기로 인해 2009년 위기가 닥쳤고, 지난해 공장을 폐업하고 당사자와 정부, 전문가들의 다양한 논의 끝에 ‘그린 일자리’로 개편해 우편수송 차량 등 공공부문 전기차를 만드는 쪽으로 가닥을 잡았다. 본격 가동을 앞둔 현재 코로나19 때문에 마스크 등 의료용 보호 장비를 임시로 생산하고 있다. 


두 번째 발제를 맡은 김상현 한양대 비교역사문화연구소 교수는 ‘그린뉴딜과 탈자본주의 가능성’이란 주제발표에서 “한국엔 진보적 그린뉴딜 담론이 정착하지 못하고 있다”며 “정부를 강하게 비판해온 정의당, 녹색당 기후위기비상행동조차 종종 혼선을 일으킨다”고 지적했다. 

 

 

‘성장과 환경’ 두 마리 토끼 잡기 

 

김 교수는 “그린뉴딜은 기존의 착취적 성장 중심 자본주의를 넘어, 개량주의에 빠지지 않아야 한다”고 했다. 김 교수는 “문재인 정부와 민주당이 추진하는 그린뉴딜에서 탄소배출 감축 목표가 빠졌다는 식의 미시적 비판에만 그쳐서는 안된다”며 “현 정부가 추진하는 그린뉴딜은 그린뉴딜이 아니라는 근본적 문제제기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성장주의에 포획된 기후위기 운동은 ‘성장과 환경’이란 두 마리 토끼를 잡으려는 언술에 불과하다. 배출권 거래제, 온실가스 감축, 탄소세 등 탄소가격제에 비판적 접근이 필요하다. 


토론자로 나선 이헌석 정의당 그린뉴딜추진위원장(생태에너지본부장)도 현재 정부와 여당이 주도하는 그린뉴딜을 놓고 “민주당(더불어민주당)도 3차 추경에 들어간 건 그린뉴딜 아니라고 말한다. 1, 2차 추경에 넣었다가 삭감됐던 상수도 ICT(정보통신기술) 사업을 3차 추경에 또 넣었는데 이런 건 그린뉴딜 아니다”라고 말했다. 


이헌석 위원장은 “그린뉴딜 한다니까, 환경부는 자기 숙원이었던 하수도 사업 들고 나오고, 지자체는 도시공원 들고 나온다. 이런 건 탄소 감축과 아무 관련 없다. 이러다간 이명박 정부의 녹색성장과 같은 꼴이 된다”며 “그린뉴딜 관련해 기층(민중)의 요구는 없다. 그런데 기업의 요구는 분명히 있다. 이제 기업이 에너지 전환을 위해 그린뉴딜을 들고 나오는 판이다. 기층의 요구를 만드는 작업이 시급하다”고 설명했다.

 

 

[사진2] 민주당 우원식, 양이원영 의원이 지난달 8일 주최한 ‘포스트 코로나 뉴노멀 그린뉴딜 어디까지 왔나! 연속 정책세미나’에서 발표된 정책 대안에는 ‘소매시장 자유화와 배전 분할’이 들어 있다. 이는 전력 민영화의 완결판이다.

 

이 위원장은 경영 위기를 겪는 쌍용차와 두산중공업을 언급하며 “북극곰 죽는 것보다 한국에선 비정규직이 먼저 죽는다. 쌍용차가 걱정이다. 쌍용차 주력은 SUV다. 그러나 지금은 전기SUV만이 경쟁력이 있다. 테슬라가 그걸 만들어서 큰 인기를 누린다. 쌍용차도 이런 발상의 전환이 필요하다. 경영 위기에 빠진 두산중공업은 15년부터 가스터빈 생산에 주력했는데, 이건 지멘스, GE, 히타치 빅3가 전 세계 시장을 꽉 잡고 있는데다가, 그 시장도 앞으로 10년이 고작이다. 탄소를 많이 배출하는 가스터빈을 동남아 등 제3세계에 팔 순 있겠지만 기후악당이란 소릴 들어야 한다. 앞으로는 탈탄소화하지 않으면 어떤 산업도 지속가능하지 않다”고 짚었다. 


구준모 에너지노동사회네트워크 기획실장도 토론에서 “그린뉴딜이 한국에선 이상한 방식으로 의제화됐다”며 “지금 회자되는 그린뉴딜은 4대강 사업 없는 문재인 정부의 녹색성장에 불과하다”고 지적했다. 

 

 

[사진3] 정의로운 에너지 전환과 분배정의, 여성, 이주노동 등 소수자 문제가 중심이 된 미국의 그린뉴딜 포스터

 

구준모 실장은 지난달 9일 민주당 우원식, 양이원영 의원이 주최한 ‘포스트 코로나 뉴모멀 그린뉴딜 어디까지 왔나! 연속 정책세미나’를 언급하면서 “그날 제시된 첫 번째 정책제안이 ‘소매시장 자유화와 배전 분할’이었다. 이는 전력시장 민영화의 최종 완성단계에서 나오는 얘기”라며 한국의 그린뉴딜 논의가 흘러가는 방향을 우려했다. 

 

 

글│사진

이정호

권유하다 편집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