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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팡에서 아시아나KO까지 40리를 걸으며 | 현장

  • 이정호
  • 2020-06-22 13:14
  • 3,782회

코로나19 비정규직 긴급행동이 주관하는 2차 긴급행동 ‘죽음과 해고를 멈추는 40리 걷기’에 참가했다. 20일 낮 1시 서울 잠실역 인근 쿠팡 본사 앞에는 400여 명의 비정규직 노동자가 하얀 셔츠를 입고 뙤약볕 아래에 앉았다. 6월인데 벌써 지열은 엉덩이를 데우기에 충분했다.


‘로켓배송’을 내걸고 출발한 쿠팡은 강남 노른자위에 떡하니 사옥을 차려놨다. 쿠팡 사옥은 잠실대교 북단에서도 보일만큼 웅장했다. 

 

 


기륭전자 김소연 전 분회장의 사회로 시작된 쿠팡 본사 앞 집회에선 기아자동차 비정규직 김수억, 쿠팡피해자모임 대표 고건, 고 김용균씨 어머니 김미숙, 현대차 비정규직 김현제 지회장, 아시아나KO지부 김계월 부지부장, 예수회 김정대 신부 등이 나와 한마디씩 했다. 
 

오후 2시가 조금 넘어서 쿠팡 본사를 출발해 걷기 시작했다. 바로 앞 잠실대교를 건너 건국대와 한양대, 동대문디자인플라자(DDP), 청계천 전태일다리, 종각역 아시아나KO지부 농성장까지 40리 길이었다. 구미에서 올라온 아사히 비정규직 차헌호 지회장이 방송트럭 위에서 내내 마이크를 잡았다. 

 

 

 

 

잠실~종각 코로나19 비정규직 긴급행동 2차 

 

잠실대교 건너 건국대쯤 왔을 때 깨달았다. 오늘 아무것도 먹지 못했다는 걸. 건국대앞 사거리에서 나눠주는 오이 2쪽으로 일단 배를 채웠다. 성수역 지하철 교각 아래 자동차 매연에 목이 막혔다. 노트북은 괜히 멨다. 뚝섬역쯤 왔을 땐 다리가 아프기보다 허기져서 편의점쪽으로 눈이 갔다. 성수동 수제화 거리엔 토요일인데도 몇몇 가게는 문을 열어놓고 손님을 기다렸다. 가게 안엔 사장인지 노동자인지 구분이 안 되는 늙은 장인이 신발 밑창을 갈아 끼우고 있었다. 


성동교에 들어서자 한양대역이 보였다. 한양대 입구 소공원에 도착하니 십시일반음식연대 밥묵차가 수박화채를 준비했다. 세월호와 장기농성장 싸움터마다 찾아다니며 봤던 반가운 트럭이었다. 화채를 퍼주시는 목사님에게 민망해 배식대를 바꿔가며 넘치도록 리필해 먹고 나서야 기운을 차렸다. 앞치마 두르시고 열심히 화채를 퍼담는 예수살기 회헌국 목사님께 미안하고 고마웠다. 옆에선 사회변혁노동자당 김태연 대표가 무대 차 위에서 재벌 곳간을 열자고 외쳤다. 노트북도 꿀잠 승합차에 맡겼다. 이제 절반쯤 남았다. 기운이 났다. 

 

 


동대문문화역사공원역에서 잠시 쉬었다가 DDP를 지나 청계천으로 접어들었다. 전태일다리에서 서울남부노동상담센터 문재훈 소장이 마이크를 잡았다. “우리 안에서 50년 전 전태일 열사가 어린 시다에게 나눠줬던 풀빵 정신을 동정과 연민으로 전락시키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문 소장은 “같이 서서 함께 싸우자는 게 전태일의 풀빵 정신”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대리운전노동자 박부영씨가 나서 “우리는 하나도 특수하지 않은데 우릴 특수고용직이라 부른다. 비록 코로나19가 우리 같은 비정규직을 덮쳤지만 죽지 말고 함께 싸우자”고 했다. 나눠주는 아이스크림 하나씩 받아서 천변을 걸었다. 

 

 

전태일 풀빵 정신은 동정 아닌 연대

 

여기까지가 허가 받은 공간이었다. 경찰은 여의도와 영등포엔 수천 명이 모여도 되지만 광화문 근처엔 수백 명만 모여도 집회신고를 반려했다. 코로나가 여의도엔 괜찮은데 광화문에선 감염된다는 건가? 청계천2가쯤 지났을까, 앞을 보니 경찰이 광교 사거리를 막고 서 있었다. 행진을 오른쪽 골목길로 꺾어 종각역으로 뛰었다. 경찰이 우왕좌왕하는 사이 모두가 무사히 종각역을 넘어 아시아나KO 농성장에 닿았다. 

 

 


마무리 집회는 철도고객센터에서 일하는 간접고용 비정규직 노동자가 맡았다. 창원에서 올라온 한국GM 창원비정규직지회 노동자는 STX조선 최근 2년 무급휴직을 끝낸 노동자들에게 무급휴직 연장을 강요했다는 얘길 했다. 그는 “작년에 GM비정규직도 580여 명 계약해지 됐는데 가진 자들은 양보하지 않는다. 99개 가진 자들이 1개 가진 노동자 것 뺏으려 한다”고 했다. 양한웅 조계종 사회노동위원회 집행위원장은 “문재인 정부에 요청한다. 코로나 해고노동자 보호, 말로만 하지 말고 실행해 옮기라”고 했다. 코로나 때문에 해고됐다가 복직을 요구하는 농성장마저 2번이나 경찰과 종로구청에 털린 아시아나 비행기 청소노동자 김정남 아시아나KO 지부장은 “코로나 시대에 정부는 ‘K방역’을 자랑하지만 ‘K산재’로 해마다 그보다 10배 많은 2000명 이상 죽는다”고 했다. 해가 지고 여름밤이 왔다. 코로나 때문에 해고돼 코로나 때문에 복직투쟁도 방해받는 아시아나KO 해고노동자들이 불안한 밤을 보내고 있다. 

 

 

 

 

글│사진

이정호

권유하다 편집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