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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지트윈타워 청소노동자 이야기 – ‘그런 마음’으로 싸운 유제순들의 승리 | 사람

  • 김우
  • 2021-08-02 16:55
  • 6,797회

 


작년 겨울 엘지트윈타워 청소노동자 유제순을 만났다. 천막농성 66일 차, 전면파업과 로비농성 3일 차 되는 날이었다. 마침 그날은 그이가, 빨간 투쟁조끼를 벗고 작업복 차림으로 현장으로 가는 동료 이탈자 3명의 모습과 마주친 날이기도 했다.

 

유제순은 나름 이해하려고 했다. 사측이 200~500만 원으로 제시하는 위로금이며, 7~8년 노동에 1700~1800만 원의 퇴직금이며, 몇 달 치의 실업급여를 생각하면 마음이 갈팡질팡할 거라고. '언제 끝날지 모르는 투쟁으로 개고생하느니 그게 더 낫지 않나' 하고 마음이 기울어질 수 있겠다고 말이다.

 

하지만 솔직하게는 가슴이 찢어지고 심장이 떨어져 나가는 것 같은 느낌이라 말한다. 1년 4개월 여 같이 싸운 날들이 겹쳐져 그러하리라.

파업 대오는 위로금 지급 시점에 10명 정도가 나가고, 다시 3명이 줄어 24명이 됐다.

 

 

 

  [사진 1] 1216. 첫 로비농성 날에 엘지트윈타워 청소노동자 집단해고 사태해결을 위한 노동시민사회단체 공동대책위원회

 

 

[사진 2] 1218. 로비에서 연대자들과 경쾌한 율동과 힘찬 노래를 권유하다

 

 

우리는 씨*년들이었다

 

유제순이 청소노동자가 됐던 시기는 아이들이 중학교에 다니던 사춘기 시절이었다. 갱년기 우울증이 오며 '나는 왜 태어났을까' 하는 고민까지 들었다. 퇴근하던 동네 언니를 붙잡고 부탁했다.

"저 좀 어디 데리고 가주세요."

 

직업소개소를 통해 가산 디지털 공단으로 가서 면접을 봤다. 육체적인 일이 너무 행복했다. 하지만 수시로 성추행이 일어났다. '궁둥이를 툭툭 두드리고', '어깨를 끌어안고', 걸레질 시범을 보인다며 '뒤에서 안으며 가슴을 스치고'감독이며 사장이며 용역업체 사장이며 가릴 것 없이 그러했다.

 

따지고 덤비니까 "독버섯은 잘라 보내야 해." 스스로 나가게끔 힘든 일만 시켰다. 그냥 나올 순 없었다.

남편과 상의해서 경찰서를 찾아갔다. "본 사람 없어서 이거는 힘듭니다."라더니 잘해 주겠다며 따라 나왔다. 경찰의 태도가 180도 달라진 이유는 아는 선배가 구로 경찰서 강력팀장이기 때문이었다. 2년 재판 끝에 승소했다.

 

'청소일은 이런 거구나, 밑바닥 사람을 짓밟는구나, 이 나라가 더러운 나라구나, 우리를 돌봐줄 경찰은 아무 일도 아니라고 넘기려다가 빽이 있으니 바뀌는구나.' 경험과 성찰의 시간을 경유하고 엘지로 왔다. 이번엔 알게 또 모르게 갑질을 당해야 했다.

 

소장이 뭐라고 해도 죄인처럼 고개도 못 들고 사는 나날. '노조로 권리를 찾아야 한다. 우리는 100명도 넘는데 왜 노조를 못 만들고 당하기만 하고 사나?' 싶은 나날이었다.

"제순 씨, 우리 노조 만들면 안 돼?"

"합시다. 어떻게든 합시다."

동료인 박소영이 식당에서 말하자마자 바로 답이 튀어나왔다.

 

'이래도 짤리고 저래도 짤리는 인생. 정년 11년에 노조 한 번 해보고 죽자'는 마음이었다.

사측 모르게 40여 명을 모으고 민주노총의 담당자를 불러서 휴게소에서 만났다. 소장은 손을 벌벌 떨고 회사는 난리가 났다.

 

몸이 아파서 눕기라도 하면 "씨*년들 일도 못 하는 년들이 쉬려고 한다." 뭘 잘못 먹어 응급실에 다녀오기라도 하면 "씨*년이 뭘 처먹었길래 배탈이 났어." 청소도구를 빠트린 날엔 "씨*년들이 걸레를 안 가지고 내려오고 지*한다."

 

별별 욕을 퍼붓는 감독에게 그저 '씨*년들' 그 이상이 아니었던 그이들이 당당하게 노동자로 바로 서는 순간이었다.

손전등을 비추어가며 티끌을 찾아내고, 계단 손잡이 안 보이는 구석에 부러 껌을 붙여놓고 구박을 하던 용역업체 팀장에게 기세 있게 고개를 드는 순간이었다.

 

 

[사진 3] 천막 농성장에 붙어있는 연대방문자들의 메시지 권유하다

 

말 못하고 살던 입을 열어 하나하나 해결했다. 관행이던 토요일 노동을, 왁스 청소를, 시간 쪼개기를 바로 잡았다. 잠가서 쉬지 못 하게 하던 휴게소 문을 활짝 열며 답답하게 닫혔던 마음의 문도 환하게 열렸으리라.

 

그런 마음으로 싸우고 있어요

 

유제순은 청소일을 창피하다고 생각해본 적이 한 번도 없다. 직업엔 귀천이 없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딸들에게도 "일하는 여사님들께 음료수라도 사드려라." 이른다. 남편도 아내를 생각하며 회사에서 자기 책상을 자기가 닦는다고 한다.

 

두 딸에게 어제 처음 농성 이야길 했다. "큰일 나요." 걱정하고, "조심하세요." 당부하지만 반대는 하지 않는다. 엄마는 한 번 한다면 하는 사람이니까 그렇다. 남편도 비난하지 않고 기를 살려준다. "자네 성질 아는데 앞장은 서지 마. 중간에서 놀아. 이왕 시작한 거니까 승리는 해야 돼~"

 

위로금을 받고 나가는 쉬운 길이 아니라, 질긴 투쟁이라는 어려운 길을 걷는 이유를 물었다.

"저 사람들이 우리를 흩어 놓으려는 수작이니까요. 절대 조직을 이탈하면 안 되죠. 꽁으로 들어온 거는 보람도 없이 나가는 법이에요."

 

"햇볕도 없는 지하실이나 계단 밑에 휴게실이 있어요. 밀폐 공간에서 쉬고 밥하고, 가래침 뱉은 세면대에서 설거지하며 일하는 청소노동자가 너무 많아요. 자꾸 알려야죠. 우리뿐만 아니라 밑바닥 노동자도 대우받는 노동자로 바꿔야죠. 위로금 1,000만 원을 준대도 마다할 거예요."

 

"우리가 이 투쟁을 성공시킨다면 우린 다닐 수 있는 날들이 길게 봐야 4~5년 이지만 우리 후배들을 생각한다면 이런 갑질 당하지 않도록 우리가 싸워야죠. 저는 그런 마음으로 싸우고 있어요."

 

 

[사진 4] 1218. 유제순의 엄지척 권유하다

 

오전 3시에 일어나서 새벽하늘 보며 첫 차로 출근하는 일인데 그래도. 70살까지 다니고 싶다고 한다. 옮겨온 노숙농성장인 로비가 그나마. 차 소리 심한 거리의 농성천막보다 낫다고도 한다. 땅값을 생각하면 오히려. 호텔보다 비싼 곳에서 묵는 셈이라고, 언제 이런 비싼 곳에서 자보겠냐고도 한다.

 

로비에서 '호강'하는 유제순도 전에는 TV에서 데모하는 사람을 보면 욕을 했다. 분신하는 사람 역시 비판했다. 하지만 너무 분하고 억울한 상황을 직접 경험하며 '내 목숨 바쳐야만 해결할 수 있다면' 하는 생각으로 불살랐겠구나, 느껴지며 이제는 이해가 가기도 한다.

 

마침내 승리

 

작년 1130일이었다. 엘지가 그룹 본사가 있는 건물인 엘지트윈타워의 청소노동자 80여 명에게 1231일부 고용 해지를 통보했다. 용역업체를 바꾸는 방식의 부당 해고 핵심은 노동조합 파괴였다.

 

엘지 그룹 계열사에서 일감몰아주기를 해온 청소 용역업체 '지수아이앤씨'는 엘지 구광모 회장의 고모인 구훤미 씨와 구정미 씨가 지분 100%를 소유한 회사다.

명절 상여금조차 없이 최저 임금을 강요하고, 그 마저도 임금꺾기를 하며 노동자를 주말 무급노동으로까지 부려온 회사다.

그 덕에 201510억 원부터 매년 10억 원씩 증가한 배당금을 지난해엔 60억 원 지급하기도 한 회사다.

 

10년 넘게 최저 임금만 받아오다가 201910월 노조를 만들어 최소 생활임금 보장을 요구하자 1년 넘게 교섭을 끌며 시급 60원 인상을 이야기했을 뿐인 회사다.

해고 통보에 전원 고용승계를 주장하자 200만 원, 500만 원, 기준도 없는 개별 위로금으로 사직서 사인을 유도한 회사다.

민주노조를 만든 비정규 노동자는 연말을 앞두고 집단 해고하되 이웃사랑 성금은 120억을 내는, 아수라 백작 엘지의 다른 한 쪽 얼굴인 회사다.

 

우리 몸을 던져서라도 성공을 바란다는, 이길 때까지 끝까지 싸우려는 생각이라는 유제순을 뒤로 하고 돌아오던 날이 지난 1218일이었다.

이후 싸움은 지난했다. 엘지는 불법 대체인력 투입과 고소고발과 경비용역으로 위협하는 걸 넘어 전기를 끊고 출입문까지 막아 연대하려는 이는 물론 밥이 들어오는 것조차 허용하지 않았다.

 

연대 시민이 만들어 온 도시락을 엎고, 가족들이 사 온 초코파이와 두유를 정문에서 후문으로 던지며 농성자들에게 나가서 주워 먹으라고 하는 게 엘지의 태도였다면. 나가면 다시 들어올 수 없으니 굶는 것을 택하겠다는 것이 농성자의 자세였다.

 

그이들은, 앞으로는 교섭하는 척하면서 뒤로는 몇몇에게 따로 연락해 청소 노동자의 1년 연봉인 2,000만 원으로 회유하는 야비한 책동에도 굽히지 않고. 농성 4개월 여 만에 마침내 승리했다.

 

430일 노사 합의문에 '여의도 트윈타워에서 농성 중인 청소근로자 전원은 7월 1일부터 엘지마포빌딩에서 근무한다, 현재 만 60세인 정년을 만 65세로 연장하기로 한다, 65세 이후에는 만 69세까지 1년 단위로 계약을 연장하기로 한다'는 내용을 한 자 한 자 박아 넣었다.

하청 노조가 원청을 상대로 직접 협상한, 값진 결과, 소중한 승리였다.

 

[사진 5] 1218. 코레일네트웍스 지지 방문 날에. 노동자의 힘, 서로의 힘, 지지의 힘, 연대의 힘이 싸움의 동력 엘지트윈타워 청소노동자 집단해고 사태해결을 위한 노동시민사회단체 공동대책위원회

 

[사진 6] 1218. 유제순의 브이 권유하다

 

인터뷰이 유제순은 이제 당당한, 민주노총 전국공공운수노조 엘지빌딩분회장이다.

체감 온도 영하 20도를 넘는 혹한의 날씨에 뜨겁게 뜨겁게 타올랐던 엘지트윈타워 청소노동자의 투쟁을, 유제순들의 그 값진 승리를 기린다.

 


김우
권리찾기유니온 편집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