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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짜 5인미만 당사자 - ㄱ잡지사] 4부: 더티 플레이어가 페어 플레이어를 만났을 때 | 사람

  • 김상은
  • 2020-12-15 18:20
  • 4,903회

 

 

권유하다의 노무사를 만나기 전 두 번째 이유서를 쓰고 있을 당시 나는 회사가 선동하는 내용에 일일이 증거를 첨부해가며 강하게 반박했다. 이제 대리인을 만났으니 이 내용과 여기에 첨부한 증거자료를 한 데 모아 담당 노무사에게 전달했다. 담당노무사는 추가적으로 몇 가지를 물어봤고, 일주일 뒤 새롭게 쓴 이유서2를 건네줬다. 노무사는 최소한의 증거만 첨부한 채 간략하고 깔끔하게 의사전달을 하는 글로 바꿔놓았다. 법리적으로 우리가 유리하니 감정적으로 대응할 필요 없다는 취지였다.

 

노무사는 사측의 답변서를 모두 읽고 선동과 날조에 능숙한 사람들임을 금세 알아봤다. 노무사 말로는 이런 경우, 사측에 일일이 대응하지 말고 반증을 제시하는 방식으로 그들의 주장이 거짓말임이 드러나게 하는 것이 훨씬 효과적이라는 설명이었다. 일단 사측의 반응을 기다려보기로 했다.

 

며칠 뒤 담당노무사가 전화를 주었다. 하 노무사는 사측 노무법인과 통화를 했는데 사측 대리인이 노무사를 선임했냐며 깜짝 놀라는 눈치라고 했다. 우리 노무사님 또 다시 상대의 패를 간파했다. “아마 노무사 없이 구제신청을 해서 힘으로 어떻게 해보려는 심산이었나 봐요.”

 

법인을 5인 미만으로 부수고 쪼개어 노동자들을 기만해가며 잉여자금을 모으는 사용주가 선택한 노무법인답다는 생각이 들었다. 힘으로 자본으로 대응해 오면서 그간 승산이 있었나보다. 해당 사장은 가짜 5인 미만 사업장을 영위하면서도 불법이라는 생각보다 스스로 사업 수완이 좋아서 이런 방식을 택했다고 굳게 믿고 있을 것이다. 소위 ‘내로남불’이다.

 

원래 사장 본인은 이공계 엔지니어였지만 본인의 사업을 접고 15년 전부터 출판사를 운영했다고 했다. 그의 할아버지가 교과서에 실릴 만큼 유명한 소설가였으니 본인이 출판업 또는 언론사에서 쌓은 경력이 없어도 출판업계에서 사업하기 좋은 인맥을 적극 동원할 수 있었을 것이다. 업계에 실무자로서 겪는 경험은 전무한 채 회사부터 차렸으니 회사를 차리지 말았어야 할 사람이 사장으로 앉은 셈이고 노동법의 의의나 사용주의 역할에 대해서도 모를 것이 뻔했다. 애초부터 진짜가 아니었으니 운영방식이나 법적대응에도 속임수가 판쳤다. 문학이 무엇인지 알 법한데 어쩌다 자본만 숭배하는 사람이 됐는지 씁쓸해졌다. 

 

열흘 만에 사측에서 두 번째 답변서를 보내왔다. 이번에는 첫 번째 답변서에 비해 사측은 다소 조심스러운 태도를 보였다. 하지만 사장이 언론이나 출판 쪽에서 업무 경력이 없던 터인지 ‘우리는 편집장의 승인 시스템이 없는 잡지사다’ 내지는 ‘이제껏 전혀 기사에 문제가 없었다’와 같이 잡지사의 관행이나 특이성까지 무시하면서 관리책임을 회피하기 급급한 내용으로 작성해 서류를 보내왔다. 

 

사측 노무사들은 한 술 더 떠서 ‘이렇게 근로자가 서울 노동위원회에 침해받은 권리에 대해 구제신청 절차를 밟고 있으니 부당해고가 아니다’라는 궤변까지 늘어놨다. 심지어 답변서 1에 기재했던 사측의 입장을 번복하는 등 말이 되는대로 반박하는 내용도 섞여 있었다. 

 

이제는 결론을 돌려줄 차례가 됐다. 담당 노무사는 이번 이유서에는 사측의 주장에 조목조목 반박하는 내용을 제시해볼 생각이라고 했다. 추석연휴를 앞두고 나는 최대한 상세히 적은 자료를 보냈고 노무사는 이를 바탕으로 밤을 새가며 세 번째 이유서를 썼다. 노무사는 연휴 전날에야 촘촘하게 적은 이유서를 완성했다며 전화를 걸어왔을 때 수화기 너머로 담당 노무사의 목소리는 갈라지고 피곤한 기색이 역력했다. 노무사와는 연휴가 지나고 심문기일에 만나기로 했다. 싸움에 휘말리지 않으면서도 당사자만큼이나 온전히 사건에 이입하는 대리인을 보며 ‘쿨’해지는 법을 새삼 배우게 됐다.

 

 

 


 

 

 

글│사진

김상은

글쓰는 노동자로 살고 싶은 1人