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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노동안전지킴이 최종진의 일기 ⑪ 안전한 현장과 위험한 현장 | 칼럼

  • 최종진
  • 2020-12-11 17:26
  • 7,256회

7.21(화) 용인 화재


오전 내내 현장을 다니다가 점심때가 돼서야 용인 화재 소식을 알게 됐다. 다섯 분의 죽음을 가져온 중대 사고다. 이번에도 물류창고다. 
4.29일 이천사고 발생 3개월도 채 되지 않은 시기에 또다시 엄청난 참사다. 노동안전지킴이로서 남다른 안타까움을 느낀다. 이번에도 안전 불감증이 빚은 사고가 아니길 바란다. 만약 책임을 지워야 할 상황이라면 엄중한 책임을 지워야 한다.

경기도 노동안전지킴이가 활동하고 있는데도 중대 재해가 줄어들지 않는 것 같아 속상하다. 생명의 소중함을 기억하며 더 열심히 하자고 다짐한다. 돌아가신 분들의 명복을 빈다. 
오늘도 퇴근하지 못하는 노동자가 없는 세상을 위해 우리 사회 모두가 안전지킴이가 되자고 간만에 아주 짧은 글을 페이스북에 올린다.

 


7.23(목) 현장 책임자의 의무


지난 15일 현장 책임자도 우리나라 사람도 없는 현장에서 이주 노동자들만 일하는 모습을 보며 분노했다. 그 현장 소장을 오늘 만났다. 

남양주시 별내동 인허가 건축 담당의 도움으로 지번과 시공회사를 알아내서 전화했는데 없는 번호라고 한다. 다시 별내동 담당 공무원에게 감리 전화를 확인하고 전화를 하자 그때서야 연락이 되었다.

 

어제 연락을 했고 오늘 오전에 현장에서 만났다. 공사 내용을 알 수 있는 공사개요판도 부착되어 있고 청소도 되어 있다. 
사무실 동행을 꺼린다. 사무실 가서 확인해야 할 내용이 있다며 사무실로 갔다.

 

현장을 비운 것, 공사 개요판을 부착하지 않은 것에 대한 문제를 제기하고 난 다음 개인보호구 지급 대장을 보여 달라고 했다.

예상한 것처럼 없었다. 지급 근거가 없으니 지금까지 안전모와 안전대 등 아무것도 지급하지 않은 것이며, 산안법을 위반한 것에 대한 책임을 물을 사유가 된다고 했다. 
사무실로 오자고 한 내 주장은 바로 이런 이유에서였다. 확인해야 한다. 현장 책임자의 의무를 방기하고 있다.

이런 경우를 이미 몇 번 확인했다. 건축주가 시공사 이름을 빌려 현장 소장이란 직무를 맡고 있지만 가장 기본적인 안전 책무도 이행하지 않고 있는 모습을 말이다.

 

안전모를 착용하게 하고 현장을 점검했다. 추락위험인 곳, 안전모와 안전대 미착용을 지적했다. 조명설치 필요 등에 대해서도 조치를 요구하고 곧 확인하겠다고 했다. 

 

[사진 1] 추락 위험인 곳 ⓒ최종진

 

부근 현장 두 곳도 이미 전에 왔던 현장이다. 여기 현장에도 건축주가 정리 작업을 하고 있었다.

불암산 기슭에 있는 별내동 다가구 주택 현장. 대부분 땅을 사서 건축주가 집을 짓는 다가구 건축현장의 안전조치는 비슷하다. 

어제 다산동에서 아파트와 근린생활시설 현장 점검을 했는데 너무도 다르다. 전담 안전관리자가 있고 없고 차이가 하늘과 땅 만큼이나 크다.

 

7월 1일부로 기존 120억에서 100억 이상 건설공사는 전담 안전 관리자를 두어야 하게끔 강화됐다. 2023에는 50억 이상으로 점점 강화된다. 그런데 50억 이하는 여전히 사각지대다. 
건설 현장의 사고 65.8%를 차지하는 50억 미만 현장은 어떻게 해야 하나? 어떤 대책을 세워야 하는가? 
빗줄기가 거세어진다.

 


7.27(월) 현장 책임자의 자세

 

지난주는 장맛비가 오락가락한 날들이 많았다. 건설 현장은 대체로 아침 7시면 일을 시작하니까 집에서는 이른 시간에 출발한다. 그 시간에 비가 오지 않는 한 출근을 한다고 보면 거의 틀리지 않는다. 
이번 주는 날씨가 어떨까? 잔뜩 흐린 날씨의 월요일 아침을 맞는다. 

 

구리시 옆 남양주 다산 신도시를 찾았다. 대규모 아파트 건설과 10층 정도의 근린생활시설 신축공사가 많이 있다. 8호선 연장구간인 다산역 공사도 진행되고 있다.

폭우는 아니지만 종일 비가 오락가락하고 있다. 

 

[사진 2] 소화기 등 화재 예방 미조치 현장 ⓒ최종진

 

오늘 들른 세 곳 중 한 곳은 화재 감시자를 배치하고 있었다. 5층 건물 안에서 용접 작업을 하는 곳에 ‘화재 감시자’라는 조끼를 입고 있었다. 
용접작업 하는 현장에서 감시자를 배치하는 것은 당연한 규정을 준수하는 것이지만 실제로 사람이 배치된 곳은 솔직히 드물다.

불꽃 방지막과 소화기 비치가 대부분이기에 신선하게 와닿는다.

 

인근 다른 현장은 정반대의 모습이다.

이동식 비계에서 벽돌을 쌓는(조적) 일을 하는 몇 명의 노동자들은 안전모와 안전대를 전혀 착용하지 않고 있다. 안전 난간대가 없으면 최소한 안전대는 착용해야 추락재해를 막을 수 있는데도 말이다.

2m 이상 되는 곳에서 일할 때는 안전모와 안전대는 필수적인 보호구다.

 

[사진 3] 안전모도 쓰지 않고 안전난간도 설치하지 않았다. ⓒ최종진

 

안전모를 지급해도 쓰지 않는다는 현장 관리자들의 말도 전혀 근거가 없는 건 아니다. 그런 면에서는 일하는 노동자들의 안전의식도 제고되어야 한다. 
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현장 관리자들의 순회 점검과 교육이 제대로 되지 않는 것이 문제다. 사업주를 대표하는 현장 관리자의 마인드가 중요하다.

 

화재 감시자를 배치하는 현장과 안전하지 않은 현장의 극명한 차이를 보는 것이 오늘 하루의 모습이다.

 


7.30(목) 휴가

 

장맛비가 지속되고 있다. 오전에 현장 나갔다가 소낙비를 맞았다. 안전모 위로 빗물이 쏟아진다.

이런 날 현장을 가면 괜스레 미안한 마음도 든다. 하지만 이런 날도 일하는 사람들의 마음을 헤아려 보는 시간이기도 하다. 
거세게 쏟아지는 비! 비 때문에 더 점검을 하는 것은 무리다.

 

내일부터 주말 끼고 휴가다. 근로계약서에서는 휴가 제도가 없었는데 지난달 미팅 때 내가 건의해서 즉석에서 결정한 휴가다.

참 소중한 시간을 갖게 되었다. 이 시간을 잘 활용하자. 하고 싶은 것도 많다. 계획한 대로 난 공부에 집중하기로 한다.

 


8.4(화) 안전대를 착용해야

 

휴가 기간 금, 토, 일 3일을 소방안전원 서울본부에서 교육을 받았다. 휴가를 공부 시간으로 보낸 셈이다. 

휴가 마치고 첫 철근을 한다. 여전히 물 폭탄이 쏟아지고 있는 나날이다.

가평에서 펜션 매몰 사고로 일가족 참변 소식이 있다. 여기저기서 수많은 재해가 발생하고 있다.

오전에 날씨를 관망하고 있다가 오후 들어 덕정에 있는 현장 두 곳을 방문했다.

 

신축 중인 병원 건물 지하 천장부에 있는 덕트(배기관)를 감싸는 일을 여러 명이 하고 있다. 랜털을 이용하고 있는데 세 곳의 사람들 모두 안전대 착용을 하고 있지 않다.

여러 번 이런 모습을 봤다. 랜털 최상층에서 일하는 데 높이가 부족하니까 발판도 아닌 랜털 장비를 딛고 일을 한다.

 

[사진 4] 너무 위험한 모습. 유리를 옮기는데 난간이 없는 곳에서 추락의 위험이 있다. ⓒ최종진

 

발판이 안정되지 않으면 사고의 위험이 크다. 그 때문에 안전대 착용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현장소장은 발주자가 따로 있기 때문에 자기 말을 듣지 않는다고 변명한다.

5명의 작업자를 모았다. 안전대를 착용하지 않은 상태에서 더는 일을 해서는 안 된다며 다섯 명 중의 책임자에게 안전대를 가지고 오라고 하고 착용하게 했다. 이런 상황에서는 이동식 비계를 이용해야 한다.

 

비로 인해 건설 현장 여기저기에 여러 피해가 속출하고 있다. 일하지 못하는 곳도 있고 빗물에 유실이나 지반 침하의 우려도 높다. 물이 고이고 바닥이 패고 지금 많은 건설 현장이 배수하느라 여념이 없는 상황이다.

 

 
8.7(금) 비가 그만 왔으면

 

어제에 이어 오늘도 비로 인해 가장 타격이 큰 현장을 찾아다녔다. 아파트처럼 지하층이 있는 현장 공사장은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침수로 인해 배수하는데 골몰하고 있다. 어떤 소장의 말처럼 밤새 물을 퍼내면 또 비가 와서 물이 채워지고 있다.

반복의 이 상황을 물과의 전쟁이라 한다.

전국이 장마로 인해 피해가 속출한다. 코로나에 장마까지 참 힘든 시기다. 양주 회천지구 기반조성을 하는 대림산업 사무실을 찾았다. 자전거 도로도 물에 잠기고 여기저기 피해가 좀 있었지만 다행히도 치명적인 피해는 없다고 한다.

교량 건설과 토목공사를 하는 담당자의 애로가 느껴진다.

산사태로 매몰된 가평, 소양호 사고가 난 춘천 등 하루에도 수많은 사고 소식이 들려온다. 이제 정말 비가 그만 왔으면 좋겠다.

 

 
8.9 소방안전관리자 시험

 

합격했다. 소방안전관리자 1급 시험. 지난해까지도 100점 만점에 60점 합격인데 2021년부터는 70점으로 상향 조정되어서 합격률이 20%대라고 한다.
주말을 이용해서 5일간 교육받고 시험을 보는 과정인데 접수하기가 매우 힘들다. 20만 원 수강료를 내고 아들의 도움으로 접수했다. 
괜히 접수해서 생고생한다는 후회감과 낭패감 속에서도 쉬지 않고 열심히 했다. 2주 정도 정말 열심히 공부했지만, 운도 좋아 합격한 것 같다. 

수강생 중 젊은 학생들이 참 많았는데(학점 반영이 있는 것 같다) 합격하지 못한 대학생들도 있었다. 한편 나보다 더 나이가 드신 분도 있었다.

강남에서 아파트 경비 일 하시는 분이었다. 소방안전관리자 자격을 취득해서 더 처우가 나은 경비 일을 찾기 위해서 공부한다고 했던 분인데 합격하지 못했다.

시간 아깝다고 점심을 빵과 우유로 때우던 분이었는데 참 안타까운 마음이다. 나중에 꼭 합격하시길!

 

[사진 5] 정리 정돈도 안전의 의무다. ⓒ최종진

 

 

글 │사진
최종진

안전지킴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