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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짜 5인미만 당사자 - ㄱ잡지사] 1부: 말 한마디로 해고된다는 것은 | 사람

  • 김상은
  • 2020-10-28 21:23
  • 4,635회

 

어느 금요일 저녁 한 잡지사에서 면접제의를 받게 됐다. 때로 취재처에서 만난 이들에게 명함을 건네받고 면접을 본 적 있었지만 직접 지인에게 소개를 받는 경우는 처음이라 어떤 회사일지 기대가 됐다. 전화통화 다음 날 알려준 주소대로 찾아갔는데 2층 주택에 간판만 걸린 외관을 보고 다시 전화를 걸어 맞게 찾아왔는지 물었다. 그렇게 들어간 면접 자리에서 1시간 반 가량 면접을 보고 그 자리에서 대표는 다음 주 출근하라고 했다.

 

규모는 작지만 굵직한 여행잡지들 마저 폐간하는 잡지업계에서 여행 콘텐츠를 계속해서 발행하고 있다는 점이 끌렸다. 잡지를 훓어보니 디자인이나 기사내용이 여러모로 부족했지만 발전할 가능성으로 보아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많을 것 같았다. 몇 번 손길만 닿아도 꽤 괜찮은 결실을 이뤄내는 사람처럼 2년 정도 열의를 쏟고 나면 브랜드 값을 톡톡히 해내는 잡지사로 성장해 있지 않을까라는 기대. 그렇게 나는 그 다음 주 월요일에 출근을 했다.

 

부푼 기대도 있었지만 마음에 걸리는 것도 있었다. 면접 당시 대표가 퇴사하는 회사 직원 두 명을 두고 좋지 않게 평가하는 모습을 보고 내가 직접 회사로 들어가 면밀히 살펴봐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대표는 퇴사자 한 사람은 ‘코로나 방침을 어겨 전 직원을 자가격리 위험으로 몰고 가게 했다’라고 평했고, 또 다른 사람은 ‘사람은 참 좋은데, 일하는 속도가 느리다’고 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우리는 5인 미만 사업장이라 연차수당, 야근수당 일체 없어요”라는 말을 해석해내지 못해 의아했다. 

 

월요일 아침 일찍 출근해 한 사람씩 인사를 하며 사무실을 돌아다녔는데, 1층에는 총무담당자들이 있고 출판물 제작담당자들이 있었다. 10명 좀 넘는 규모의 회사이다 보니 실세와 추종자 구조가 대강 짐작됐다. 2층으로 올라가니 더 가관이었다. 닭장처럼 다닥다닥 붙은 책상 6개를 몰아두고 각 임원들 방은 귀퉁이마다 3개가 자리하고 있었다. 쎄한 분위기에 독서실처럼 조용한 사무실. 본능적으로 신경이 곤두서는 건 여간해서 사람 사는 곳에서 느끼기 힘든 서늘한 공기 때문이었다. 

 

그래도 일단 앞서 판단하기보다 주어지는 일에 충실하기로 했다. 본 업무와 상관없는 일이라도 기꺼이 맡아서 일단 처리한 다음에 보고하겠노라 마음먹었다. 기사만 작성하는 게 아니라 광고시안을 짜야하고 교과서 편집에 더 나아가 디자인연구소, 경영지원팀 잡무 여행사업서 작성까지 도맡게 됐다. 공보과에 보낼 매체소개서를 쓰고 저녁 여덟시까지 여행사업 기획회의를 했고, 마감 날에는 밤 10시가 다 되어 퇴근하는 날도 여러 번이었다. 그리고 잡지가 나오는 날에는 잡지를 포장하고 박스를 나르는 일까지 했다. 그렇게 첫 잡지가 나와 박스를 나르고 있을 때 갑자기 본부장이 대표실로 데리고 들어가더니 “오늘까지 하자”라고 해고를 통지했다.

 

 

 

글│사진

김상은

글쓰는 노동자로 살고 싶은 1人