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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세는 나가는데 개강은 9월이래요" | 정책

  • 이정호
  • 2020-06-11 10:25
  • 6,642회

"월세는 나가는데 개강은 9월이래요."


지방에서 올라온 대학생 A씨는 등교 개강이 9월로 연기됐는데도 구해놓은 자취방 때문에 계속 월세를 낸다. 월세 뿐 아니라 본가에서 지냈으면 안 들어갔을 생활비까지 지출한다. 집 주인에게 방값 얘기를 해봤지만 소용없었다. ‘착한 임대’ 같은 건 언론에서나 나오는 얘기였다. 
 

민달팽이유니온 최지희 위원장은 지난달 28일 국회에서 열린 ‘코로나 위기, 주거세입자 정책 간담회’에서 임대차분쟁조정위원회의 조정기능을 강화해 대학 개강 연기에 따른 감액 지원이 필요하다고 했다. 주택임대차보호법 7조(차임 등의 증감청구권)에는 “경제사정의 변동으로 인해

적절하지 아니하게 된 때에는 장래에 대해 그 증감을 청구할 수 있다”고 했지만 기준이 모호해 상징적 문구에 불과하다. ‘경제사정의 변동’ 기준을 구체화해 사문화된 감액 청구권을 살려야 한다. 

 


[사진1] 기초생활보장법바로세우기공동행동은 날이 화창했던 지난달 28일 국회 앞에서 장애인과 가난한 이들의 21대 국회 입법과제 발표 기자회견과 ‘코로나 위기, 주거세입자 정책간담회’를 잇따라 열었다. ⓒ빈곤사회연대 


보증금 100만원에 월세 10만원짜리 방에 사는 프리랜서 B씨는 주로 연극배우로 일하고 일용직 알바를 뛰는데, 코로나19로 공연과 알바 자리 모두 없어져 보증금을 월세로 다 까먹고 이젠 월세도 체납됐다. 주거복지센터 지원으로 체납 월세는 해결했으나 소득은 여전히 고민이다. 집주인은 당장 나가라고 한다. 임대차보호법 6조(계약 갱신) 3항엔 임대료를 2번 연체하면 계약 갱신이 안 된다. 
 

민달팽이유니온 등 주거권 운동단체는 코로나 위기단계가 해제되고 몇 달 동안이라도 ‘2번 연체’ 조건을 늘려달라고 한다. 또 정부가 달세 연체로 인한 강제집행을 한시라도 유예하는 행정명령을 내려달라고 요구했다. 
 

건설일용직 C씨는 월 150만원 수입으로 종로구 여관에 일세 2만원을 내고 살았으나 일거리가 줄어 일세가 체납돼 퇴거 위기에 처했다. 주거복지센터 도움으로 전세임대주택에 입주했으나 여전히 소득은 불안정하다. 
 

남대문 쪽방에 사는 D씨는 기초생활수급자로 폐지를 수집해 부수입으로 살았다. 코로나로 100kg에 5천원하던 폐지 가격이 2천원까지 폭락했다. D씨는 남대문 쪽방지역 개발로 퇴거까지 종용받고 있다. 
 

이날 간담회에 나온 홈리스행동 이동현 상임활동가는 정부나 지자체가 행정명령으로 소득이 감소한 소액 월세 임차인이나 고시원, 쪽방 거주자에게 주거지원을 확대해야 한다고 요구했다. 
 

이런 주거빈곤층은 정부 통계로도 244만 가구가 넘는다. 2018년 국토교통부 주거실태조사에 따르면 전월세 753만5천 가구 중 60.4%인 455만 3천 가구가 월세(보증부월세나 순월세) 가구다. 이들 중 서비스업이나 판매업, 단순 노무 등 불안정 취약 직업군에 속하면서 월세로 거주하는 가구는 244만 8822가구다. 이들 중에서도 보증금 한 푼 없이 순월세로만 생활하는 33만 3558가구는 주거가 가장 불안정하다. 


 

[사진2] 국회 앞 기자회견 참가자들이 노숙인 복지법 개정과 강제퇴거금지법 제정 등 요구를 담은 손팻말을 들고 있다. ⓒ빈곤사회연대 

 


 

[사진3] 주거빈곤 표
 

주거권 운동 단체들은 정부와 지자체가 코로나 위기 때라도 법 개정이나 임대차분쟁조정위 역할 강화, 행정명령 등으로 이들에게 임대료 동결이나 감액을 지원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홈리스들 상황은 더 어렵다. 이들은 인터넷도 안 되고, 주소와 거소의 분리, 거주불명등록 등의 이유로 재난지원금 받기도 어렵다. 빈곤사회연대와 홈리스행동 등은 지난달 9~10일 홈리스 102명에게 실시한 재난지원금 실태조사 결과 고작 12명(11.8%)만 지자체 재난지원금을 받았다. 
 

못 받은 이유는 서울에 살지만 주민등록상 주소지가 멀리 지방(27%)이라거나 신청방법을 몰라서(26%), 거주불명 등록자(23%)거나, 신분증이 없어서(3%)라고 답했다. 

 


 

[사진4] 홈리스 실태조사, 재난지원금을 못 받은 이유
 

이들 중 카드 사용이 가능한 사람은 24.5%에 불과했다. 통장 사용이 가능한 사람도 34.3%에 불과했다. 홈리스 대부분이 빚 때문에 지급정지나 압류된 상태다. 홈리스 71.3%가 부채가 있고, 노숙인 77.1%가 금융채무불이행자다. 
 

재난지원금을 받는다면 쪽방 등 주거비로 사용하겠다는 응답이 50%로 가장 많았다. 보증금 없는 쪽방은 주거비를 현금으로만 받기 때문에 카드 포인트로 지급하면 이들에겐 무용지물이다. 
 

정부는 재난지원금 신청 장벽을 없애려고 독거노인이나 장애인에겐 ‘찾아가는 신청’을 하고 있다. 이처럼 지자체가 노숙인 종합지원센터나 일시보호시설을 중심으로 현장에서 신청 받아 현금으로 지급해야 한다. 
 

홍정훈 한국도시연구소 연구원은 이날 간담회에서 “미국 50개 주 가운데 42개 주가 법원명령이나 주지사 권한으로 코로나 위기 종료 뒤 일정 기간까지 임차인의 퇴거와 단전단수 등을 금지시켰다”고 말했다. 코로나 바이러스가 터지기 전까지 미국 전역에선 한 달에 30만건의 퇴거소송이 제기됐으나 연방 정부와 주 정부의 이번 조치로 일시적이나마 주거빈곤층이 혜택을 입었다. 

 


 

[사진5] 미국의 주거빈곤가구 지원 정책
 

프랑스와 스페인, 영국, 오스트리아, 호주 정부도 이런 조치를 취하고 있다. 유엔 주거권특별보고관은 지난 4월8일 세입자와 주택담보대출 채무자를 보호하기 위한 가이드라인을 발표하고 이를 각국에 권고했다. 가이드라인엔 소득이 감소한 세입자의 주거비가 부담가능한 수준이 되도록 보장하고, 체납으로 인한 퇴거나 퇴거 위협을 금지하고 임대료 동결과 인상 금지, 임대차계약 해지 금지 등 12개 조항이 담겼다. 
 

 

이정호

권유하다 편집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