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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년 간 3차례나 사직 강요 | 사람

  • 이정호
  • 2020-10-26 11:03
  • 9,084회

본사 관리자는 5평 좁은 사무실에 찾아 와 7시간 동안 사직서를 쓰라고 종용했다. 관리자도 사직 이유를 대지 못했다. 50대 후반인 A씨는 이렇게 2년 동안 3번이나 사직을 종용 받았다. 끝내 사직서는 쓰지 않고 나왔다. 자신이 당한 일을 설명하는 A씨는 똑 부러졌다. 여고 상업반을 졸업하자마자 1981년 건설 중장비를 다루는 중견기업에 들어가 꼬박 10년간 회계를 맡았다. 뭐든 하면 똑 부러지게 한다는 소릴 들었다. 초등학교 때 어머니를 여윈 터라 일찍 독립해 독박육아 했던 몇 년을 빼면 40년을 쉬지 않고 일했다. 두 아이와 자신의 생계를 오롯이 혼자 책임졌다. 


A씨는 나이 오십을 넘겨 상가 건물 관리사무소에 회계 일을 맡으러 들어갔다. 계열사만 20여 개에 달하는 대기업 지주회사인 B사가 소유한 건물이었다. 입점업체도 40개가 넘었다. 지은 지 20년 가까이 된 건물은 크고 작은 문제를 일으켰다. 겨울엔 우수관이 얼고, 주차장 경사로는 관리를 안 해 차들이 미끄러지기 일쑤였다. 관리소장은 있지만, 본사 직원이 달마다 와서 지출결의서에 일일이 결재를 했다. 소장 등 주요 직책은 본사 관리자가 직접 면접해 채용했다. 

 

 

A씨는 우수관 결빙을 막고, 미끄럼 방지시설을 만들고, 건물 곳곳에 몇 년 째 쌓인 생활쓰레기도 말끔히 치웠다. 2년 전 청소노동자 1명이 소장의 실수를 꼬투리 잡고 업무지시를 어기거나 안하무인으로 행동하면서 갈등하다가 해당 청소노동자와 소장이 바뀌자 본사는 A씨에게도 퇴사를 종용했다. 회사는 A씨의 해고를 결정하고 자택 대기발령을 내렸다. A씨가 완강히 거부하자 한 달 정직으로 최종 처리했다. A씨는 억울했지만 본사 관리자가 ‘미안하다’며 ‘정직 1개월로 하자’고 해 수용했다. 

 

본사 직원 찾아와 7시간 사표작성 강요도

 

새로 온 소장이 넉 달 만에 퇴사하자 본사 관리자는 관리사무소로 찾아와 A씨에게 다시 권고사직을 강요했다. A씨는 5평 남짓한 사무실에서 화장실 한두 번 다녀 온 걸 빼고는 꼬박 7시간 동안 사직서 작성을 요구하는 본사 관리자를 견뎌야 했다. A씨는 사직할 만큼 잘못한 일이 없다고 버텼다. 돌아간 관리자는 며칠 뒤 다시 A씨에게 업무를 지시했다. 다시 넉 달이 지났다. 지난여름 월요일 아침에 출근한 A씨는 자신의 책상 위에 놓인 ‘계약종료통보서’를 봤다. 금요일 자신이 퇴근한 뒤 본사 관리자가 와서 책상 위에 해고예보 통지서를 놓고 갔다. 한 달 뒤 근로계약을 종료한다는 통보였다. A씨는 황당하고 억울했다. 
 

A씨는 집에 돌아와서도 억울했다. 본사의 태도에 화가 났다. A씨는 지금 3번이나 부당하게 사직을 강요한 회사를 상대로 고용노동부에 직장 내 괴롭힘 신고를 준비 중이다. 못 받은 연차수당을 요구하고, 마음을 바꿔 부당해고 구제신청도 준비 중이다. 
 

A씨는 실업급여 문제로 고용노동부 고용센터에 갔다가 다시 황당한 일을 겪었다. 센터 고용지원관이 A씨에게 “회사가 ‘본인 귀책에 의한 권고사직’이라고 신고해 실업급여를 못 받는다”고 했다. A씨는 사정을 얘기하고 그 자리에서 본사 관리자에게 연락해 항의했다. 본사 관리자는 고용지원관과 통화 끝에 A씨 퇴사를 ‘경영상 권고사직’으로 고쳤고, A씨는 실업급여를 받게 됐다. 
 

A씨는 “6년 가까이 건물관리에 최선을 다했는데 상은 못 줄망정 어떻게 3번씩이나 해고를 종용하냐”고 되물었다. A씨는 빚만 늘어나는 남편과 헤어져 20년 넘게 두 아이를 혼자 키우며 살았다. 열심히 살 수밖에 없었다. A씨는 지금도 장성한 두 자녀와 함께 산다. 
 

당분간 더 일해야 하는데 어떤 일을 하시겠냐고 물었더니 A씨는 “건물관리 일을 더 해보고 싶다”고 했다. 본사의 갑질에 질려 전혀 다른 업종을 찾을 거란 예상은 보기 좋게 빗나갔다. A씨는 “20년 넘게 건물관리와 회계 관련 일을 했기에 노하우도 생겼다”며 자신감을 드러냈다. A씨가 또다시 B사 같은 건물주를 만나지 않았으면 한다. 

 


이정호
권유하다 편집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