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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 영상] 대학원 실험실 폭발사고! 학생 치료비 9억, 대학원 당국은 나몰라라 (대학원생노조 국회 농성 돌입) | 현장

  • 안창규
  • 2020-10-09 18:08
  • 5,223회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전국대학원생노동조합지부(대학원생노조)에서는 2020년 10월 6일 오전, 국회 앞에서 안전한 대학 조성과 대학 공공성 확대를 요구하며 국회 앞 농성을 시작했다.


2019년 12월 경북대학교 화학관 실험실에서 폭발사고가 발생, 다섯 명의 대학원생이 크고 작은 화상 사고를 당했다. 그 중 두명은 중증 화상을 입어 아직도 병원에서 입원 치료중이다. 


지금까지 두 명의 학생에게 청구된 치료비는 9억 원에 달하지만 대학원생은 노동자로 인정되지 않아 산재보험을 적용받지 못하고 있다. 
 

현재 피해를 입은 학생연구원들이 가입한 보험으로 고작 요양치료비 5천만원에 불과하다. 
 

사고에 책임있는 경북대 대학 당국은 9억원에 달하는 치료비 지급을 미루고 있어 피해를 입은 학생연구원과 가족들은 어려운 상황에 처해있다. 대학원생노조는 일하고 있는 대학원생의 노동성을 인정받고, 안전한 노동 환경을 만들기 위한 법안이 통과될 수 있도록 농성을 이어갈 예정이다.

 

아래는 경북대 화확관 실험실 폭발 사고로 중상을 입은 패해 대학원생의 아버지 임덕기 씨의 편지 전문이다. 

 

 

『안전한 대학 조성과 대학 공공성 확대를 위한 입법활동 촉구 대학원생노조 국회 앞 농성』에 보내는 지지와 연대의 편지 


고맙습니다.
오늘부터 농성에 돌입하는 대학원생노조에 무한한 감사의 말씀을 우선 전합니다.
저는 경북대 화학관 화재폭발사고로 중증전신화상을 당한 피해학생의 아버지로서, 대학원생노조가 그간 보여주신 희생적인 연대의 노력을 잘 기억하고 있습니다. 고맙습니다.


2019년 12월 27일, 경북대 화학관에서는 시료폐기 작업 중 불행히도 화재폭발사고가 발생했습니다. 4명의 피해 학생 중 경상자 2명은 단기입원 후 퇴원. 중상자 중 1명은 지난 7월 퇴원 그리고 또 다른 중상자 한명은 퇴원일을 기약도 할 수 없는 상태로 여전히 반복되는 수술 속에 힘겹게 버티고 있습니다. 저는 ‘82~89% 전신3도중증화상’이라는 진단을 받은 피해학생의 아버지입니다. 현재 사랑하는 저의 딸은 경북대병원으로 이송되어 조직의 고착으로 인한 장애 교정 수술을 받고 입원 중이며, 3주 뒤 다시 사고 후 계속 입원 중인 화상전문병원으로 재입원할 예정입니다.


이번 사고를 겪으며 참 많은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학교란 무엇인가’라는 근본적인 질문에서부터, 학생 연구자들이 처한 일상적인 위험에 이르기까지 많은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이런 생각들은 사고 처리 과정에서, 무책임한 ‘대학’ 측의 태도를 반복적으로 확인하면서 차곡차곡 쌓여 갔습니다. 지시된 업무를 수행하다가 학내에서 사고를 당했지만, 학교는 ‘치료비 지급 중단’이라는 일방적인 통보를 피해 학생들과 가족들에게 전했습니다. 생사의 고비를 넘나들며 거의 기적적으로 하루하루를 버티고 있던 피해학생들과 그 가족들은 대학 측이 이런 말을 일방적으로 던질 것이라고는 상상조차 하지 못했습니다. 국립대학인 경북대는 학내 사고로 피해를 입은 학생들의 치료비 지급을 중단하겠다는 말을 통해 스스로 학교임을 포기하였습니다. 그리고 그 말을 지시하고 전달한 총장과 보직교수들은 또한 스스로 ‘스승’임을 포기하였습니다. 국립대학이 국가 기관임을 생각하면, 이 상황은 국가가 국민을 버리겠다는 것과 무엇이 다릅니까?


여론이 악화되고 가족들의 항의가 공식화되자, 피해학생 가족들에게 ‘밀린 치료비를 바로 지급하겠다’고 약속했던 경북대 총장은 아직도 그 약속을 지키지 않고 있습니다. 심지어 “가장 시급하게 해결해야 할 문제”라고 말했던 총장은 어떤 구체적인 노력도 보이지 않다가 가족과 합의한지 무려 3개월이 지나서야 ‘규정 개정’을 교수회에 넘겼고, 그 개정된 규정조차도 아직 효력을 발휘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사고 발생부터 지금까지 경북대 총장과 본부 측은 일관되게 ‘규정’을 방패삼아 무책임한 태도를 보여 왔습니다. 그들에게는 학내 실험실에서 지시된 업무를 하다가 27세 여학생이 중증전신화상을 당했다는 사실이 특별한 일도 아니었고, 피해학생의 치료와 재활을 위해 사력을 다해 지원할 일도 아니었습니다. 그들에게 그 사고와 수습과정은 단지 규정에 따라 처리하면 될 행정업무 중 하나일 뿐이었습니다.


이번 사건은 경북대 만의 문제가 아닙니다. 국립대학 조차도 이런 상황이라면, 대한민국의 학생 연구자들이 처한 상황은 선명하게 짐작되어 집니다. 이런 대학의 상황이라면 학생 연구자들은 목숨을 답보로 매일 학교 실험실로 갈 수 밖에 없습니다. 아무도 책임지는 자가 없는 학교에서, 그리고 사고 발생 시 탈출조차 불가능한 열악한 구조의 실험실에서, 오늘도 학생 연구자들은 연구에 몰두하고 있습니다. 누가 젊은이들을 이런 불구덩이 속으로 밀어 넣을 권한을 가지고 있습니까?


이제 또 다시 경북대와 같은 비극적인 사고가 발생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 그리고 불가항력적인 사고가 발생한 경우에도 수습을 위해 학교가 필사의 노력을 다하도록 강제하기 위해서라도 온전한 법적·제도적 장치가 반드시 갖추어져야 합니다. 저는 사랑하는 딸이 자신의 무너진 몸을 보며 절망하는 모습을 매일 보고 있습니다. 그러나 저는 몸과 함께 딸의 마음마저 무너져 버릴까 더 무섭습니다. 학교가 자신을 버린다는 사실에 대한 배신감과 절망이 사랑하는 딸의 재활 의지를 무너뜨릴까 저는 매일같이 외줄을 타는 심정입니다.


그럼에도, 저는 이번 사고를 계기로 대학원생노조 조합원들을 만나며 희망을 가져 봅니다. 안전한 실험실 환경을 확보하기 위한 대학원생노조의 진지하고도 구체적인 노력을 보며, 저의 딸이 겪은 고통이 재발하지 않는 세상에 대한 희망을 가져 봅니다. 더 안전한 실험실, 목숨을 담보로 거는 것이 아니라 사람 사는 세상을 위한 창의적 연구에 젊음을 거는 학생 연구자들의 공간. 이 공간을 만들기 위한 법적·제도적 장치를 요구하는 오늘의 농성에 지지와 연대 그리고 감사를 전합니다. 어쩌면 이 농성이 저의 사랑하는 딸이 다시 마음을 추스르고 버틸 수 있는 계기가 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하며 저는 이 편지를 씁니다. 여러분 정말 고맙습니다.


2020년 10월 6일
경북대 화학과 화재폭발사고 피해학생의 아버지

 

글 ㅣ 영상
안창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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