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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노동안전지킴이 최종진의 일기 ⑦ 더 단호해져야 한다 | 칼럼

  • 최종진
  • 2020-10-07 16:53
  • 7,326회

6.25(목) 비 오는 날


어제와 오늘 비가 내렸다. 어제 오전, 남양주 북부경찰서 신축 현장을 찾았다. 빗줄기가 세어져 주차한 곳에서 현장사무실까지 걸어가면서 비를 맞았다. 안전모 위로 빗물이 흘렀다.

현장 지하층에서 일하는 곳은 너무 어두웠다. 조명시설을 요구하고 전선이 복잡하게 방치된 배전반 관리를 주문했다. 자재를 옮기기 위해서 개구부 추락위험이 있는 곳엔 아무런 조치가 없었다. 자재 이동이 끝나면 즉시 안전 난간대를 설치하여 추락 방지 조치를 해야 한다.

 


[사진1] 추락 방지를 위해선 이런 띠가 아니라 안전난간 설치가 필요하다.  ⓒ최종진


오늘 오전, 비가 오락가락하지만 현장을 찾았다. 일하지 않는 하나의 현장과 일하는 두 곳을 찾았다. 병원신축 현장에는 천장 보온재를 싸는 일을 하는 여러 명의 노동자가 있었다. 그런데 고소작업대 위에는 안전난간 쇄정도 하지 않은 채 안전대와 안전모도 착용하지 않고 있다. 여성들과 외국인 노동자들이다.

 

현장소장에게 유감을 표했다. “이렇게 일을 시키셔야 하겠냐.”는 말이 절로 나왔다. 고소작업대 일을 할 때 전혀 교육하지 않은 증거다. 터 파기 공사도 있고 전기작업도 있다. 배선은 물에 잠겨 있다. 담에 방문할 때도 문제가 있으면 행정조치를 해야 할 것 같다.

 

 

6.26(금) 마음에 비 오는 날


금방이라도 비가 내릴 것 같은 잔뜩 흐린 날, 그저께 어제 이틀 동안 찾은 남양주 오남읍 오남리는 다음 주로 미루고 별내로 가기로 했다. 종교시설을 신축하는 철골 철근 현장을 먼저 가야 할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현장에 도착하니까 지붕에 씌울 패널을 땅에서 크레인으로 권상하는 작업, 패널을 씌우기 위해서 철판에 나무 합판을 덧대는 작업, 철근을 이동하는 작업 등을 하고 있다. 

 

철골 철근 구조물은 공장이나 창고 등을 지을 때 많이 이용한다. 공사 기간도 다가구 주택처럼 길지 않은 것이 일반적이다.

우선 계단이나 단부에 안전난간이 제대로 설치되어 있지 않아 추락위험이 있다. 더구나 안전대도 착용하지 않고 있다. 대동한 소장에게 지적하니까 사무실에 있는 안전모와 안전대를 가져와서 즉시 착용시켰다. 

 

또 다른 한 곳은 승하강용 사다리나 발판도 없이 난간을 딛고 작업하고 있다. 상당히 위험하다. 불안정한 자세는 사고의 직접적인 원인이 된다. 산업안전보건법에서는 높이 2m 이상에는 폭 40cm 이상의 발판을 요구하고 있다.

소장에게 문제를 제기하니까 작업을 일단 중단시켰다. 철골 현장은 안전대 착용이 가장 기본이다. 그 외에도 단부 추락위험이 여러 곳 있었다. 

 

시끄러운 소리가 들리는 지하로 내려갔다. 공기압력으로 시멘트와 접착제를 혼합해서 뿜는 작업을 하고 있는데 무척 소음이 크다. 휴대전화기에 장착한 소음측정기를 켜보니 95db가 넘는 소음, 제한된 시간만 허용되는 수치다. 소음뿐만 아니라 시멘트 가루가 구름처럼 솟아오른다.

 

화도 나고 침울해진다. 이런 곳에서 귀마개나 방진 마스크도 없이 일하고 있다. 소장은 귀마개 구매를 전화로 하고 있다. 유해하고 위험한 현장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은 전혀 환기도 되지 않는 곳에서 종일 시멘트 가루를 마시고 소음에 노출되어 있지만 단 한마디도 하지 못하는 사람들이다.

이 노동자들의 건강과 안전을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역할에 한계가 있다는 현실이 슬프다.

 

인근 단독주택 건설 현장으로 갔다. 목재와 시멘트 혼합 등의 작업을 하는 곳이 여러 곳이었다. 옥상 천장 작업을 하며 지붕 위에 합판을 깔면서 안전모 심지어 안전화도 신지 않은 노동자도 있다. 현장 관리자는 동행도 하지 않았다. 추락위험이 있으니 안전줄을 걸고 안전대를 착용하라고 요구했다. 젊은 관리자는 결코 말을 듣지 않을 것 같았다. 또 한 곳에선 현장 소장이 없다고 거짓말을 했다. 오늘 참 속상한 마음이다.

 

[사진2] 안전대를 걸려고 줄을 매는 모습 ⓒ최종진 

 

안전지킴이의 자세란 무엇일까. 현장점검을 하는 목적은 안전을 확보하기 위한 것이다. 물적 상태와 인적(보호구 착용 등) 상태를 구체적으로 점검해야 한다. 안전지킴이가 2인 1조인 건 중요하다. 장점이다. 그러나 간혹 두 사람의 의견이 맞지 않을 때도 있다. 어떤 상황에서 나와는 다른 판단과 모습을 보일 때가 있다. 내가 어떤 관점에서 문제의식을 느낄 때 상대방은 별문제 아닌 걸로 판단할 수 있다. 가끔 이럴 때면 고민스럽다.

 

현장 소장이나 관리자들은 어쩔 수 없다는 말을 자주 한다. 실제 그럴 수도 있고 핑계일 수도 있다. 그럴 때 지킴이는 맞장구를 쳐야 할 것이 아니라 그의 생각을 바꾸어야 하지 않을까? 난 그렇게 생각한다. 관행을 바꾸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들(현장 책임자들)과 적대적으로 대할 필요는 없지만, 굳이 친할 이유도 없지 않은가?

 

안전지킴이들과 대화를 할 때 간혹 아쉬운 점을 발견한다. 난 노동자라고 표현하는데 다른 이는 근로자라는 표현을 쓰는 것이다. 계급의식이나 경험 등 각자 다른 사람들이 모여 있다는 걸 이해하면서도 왠지 부족하고 서운한 생각이 드는 건 어쩔 수 없다. 그 정도는 내가 이해하고 맞추어야 할 것도 같다.


하지만 소장이나 관리자들의 거짓과 기만을 그냥 보고 있는 것은 잘못된 자세다. 우리를 무시하고 있는 현장 관리자나 소장에게는 단호해야 한다는 것이 나의 생각이다. 

 


[사진3] 줄걸이를 하고 안전대를 착용한 모습. 이래야 한다.  ⓒ최종진

 

글│사진

최종진

노동안전지킴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