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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팡 노동자 이야기 ② - 코로나 확진자로 살아간다는 건 | 사람

  • 김우
  • 2020-10-06 18:21
  • 1,986회

소록도에 인권 기행을 간 적이 있다. 주최 측을 믿고 참가하지만, 혹여 한센병 감염의 위험은 없는지 참가 전날 밤 컴퓨터를 뒤적여보았다. 기우였다. 한센인은 이미 오래전에 완치돼 전염 가능성이 없었다.


만남의 자리는 넓었고 인원은 많지 않았지만, 부러 한센인의 옆자리에 앉았다. 격리의 긴 세월을 보내온 이들에게 이젠 괜찮다고 몸으로 말하고 싶어서였다. 하지만 과거 한센병을 앓은 이는 고개를 들고 눈을 마주치며 말하지 않았다. 몸을 조금 틀고 고개를 돌려 말하며 무척이나 조심스러워했다.

 

감염의 상흔은 뭉그러진 얼굴과 뭉툭해진 조막손으로만 남은 게 아니었다. 국가와 세상이 준 마음의 상처는 슬프게도 습관처럼 남아버렸다는 생각이 들었다. 소록도는 감염인의 ‘병을 박멸’하려던 곳이 아니라 가둬두고 단종 수술해서 ‘감염인을 박멸’하려던 곳이었기에 그랬다.

 

얼마나 불안하고 무서운 데. 
얼마나 외롭고 두려운 데

 

최근 한 노동자를 만나며 그 한센인을 떠올렸다. 서로 마스크를 쓰고 이야기하다가 물을 마실 때였다. 마스크를 벗고 고개를 돌려 컵을 기울이는 모습. 어르신들과 술자리를 하는 젊은이도 아닌데 그렇게 했다.

 

그이는 쿠팡 부천신선물류센터발 코로나19 집단감염 사건의 피해자였다. 확진 후 병원에서 치료를 받고 감염 위험이 없다는 진단으로 퇴원을 했다. 하지만 여전히 나오는 양성 판정으로 아직도 자신을 고립시키고 있는 노동자였다. 


“사람들이 뭔가 ‘이 사람하고 접촉하면 안 되는 거 아냐?’... 우리 가족들도 찜찜하게 생각하고 있어요.”
양성 판정은 죽은 바이러스가 몸에 남아 있어도 나오는 것이었지만 모두가 꺼림칙해 하니 별수 없었다. 그이의 말대로 ‘보건 전과자로 가족이나 주변 사람들에게 평생 주홍글씨를 안고’ 살아가고 있었다.

 

병실에선 고립의 시간 속에 죽음의 공포와 싸웠다. 6인실을 1인실로 개조하며 앞 침상은 비닐로 싸 놓았다. 밤이 되면 비닐로 싸놓은 것이 영안실 분위기가 나고 무서웠다.

음압병실이니 창문을 못으로 박은 건 알겠는데 문도 밖에서 잠가 놓았다. 병실에 텔레비전은 있지만, 뉴스를 보면 코로나19 관련 후유증 이야기며 사망한 이야기가 쏟아졌다. 


병실에 들어오는 이는 하루 한 번 청소를 하러 오는 사람과 하루 세 번 밥을 주러 오는 사람이 전부였다. 방호복을 뒤집어쓴 이들과 대화 한 마디 나눌 수 없었다. 혈압 등은 직접 체크해서 전화로 전해야 했다. 병실에서 엑스레이를 찍고 피를 뽑은 결과는 한 주에 한 번 병실 문 앞에서 통보받을 뿐이었다.

 

잘 안 들려서 가까이 걸어갔더니 ‘더 오지 마세요, 거기서 얘기하세요.’ 하는 제지를 받았다. 모두에게 접근 금지된 사람이 되어. 을씨년스러운 병실에 ‘윙윙’ 음압기 돌아가는 소리와 외로움 외엔 함께하는 것이 아무것도 없었다. 

 

“감염병이 얼마나... 고통스럽고 무서웠어요, 굉장히.” 


“차라리 징역 3년 받으면 ‘아 나는 3년 뒤에는 나가는구나.’ 그걸 바라볼 수나 있지. 이건 음성이 나와야 나가는 거니까 오죽하면 소록도 나병환자처럼 격리될 수도 있겠구나... 국가에서 그런 데 보낼 수 있겠다는 극단적인 생각까지 들었어요. 별의별 생각이 다 들었죠.” 


감옥도 운동 시간에는 나갈 수 있고, 사형수도 면회가 되어 사람을 만날 텐데 하는 생각이 들었다. 언제까지라는 기한조차 없는 격리. 죽어서 나갈 수도 있다는 생각, 죽을 때까지 나가지 못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 모두 공포였다.

 

자가격리와 거리두기의 경험은 공동체에서 보듬어지지 못하고 상처로 남았다. 가족, 친구, 동료, 이웃, 일터가 저어 만큼의 거리로 물러섰다.


“안방에 나 혼자 자가 자체 격리하고 있어요. 혹시라도 몰라서. 가족들도 아내도 그걸 원해요. 아이가 있으니까 그렇죠. 아내가 아침에 출근하며 비닐봉지에 뭐 넣어서 주면, 방에서 끓여 먹고 방에 딸린 욕실에서 설거지해요.” 


대학생인 아들은 방에서 거실로 가다 우연히 아버지와 마주치자 자신도 모르게 흠칫 놀란 모습을 보였다. 서로 미안하고 서로 안쓰럽고 서로에게 상처다. 가족 사이에도 금이 그어지고 건너기 어려운 강물이 흐른다. 

 

“제가 아파트 꼭대기에 살아요. 나 확진 받고 1시간이나 2시간 있다가 느닷없이 예고도 없이 방역하는 사람이 이거(방호복) 다 뒤집어쓰고 2명이서 엘레베타 타고 올라와서 들어와갖고 뿌려댔어요. 그러믄 아파트 사람들 다 알지.”


아파트 엘리베이터에서 ‘바라보는 시선에 위축’이 돼서 계단으로 다니고 있다. 몸이 고단한 것이 마음이 고달픈 것보다 낫기 때문이다. 금전적인 여건이 되면 이사하고 싶은 마음이다. 하지만 그런 여유가 있었으면, 그렇게 ‘돈 있고 빽 있었다면 쿠팡 같은 곳에서 알바하고 계약직할 이유가 없었’다는 안타까움이 있다. 

 

나 돌아갈래? 아니 돌아가지 않을래!

 

그이는 돈도 없고 빽도 없지만, 다시 쿠팡으로 돌아가고 싶지는 않다. 돌아갈 수만 있다면 코로나19에 감염되기 전으로 돌아가고 싶을 뿐이다.

쿠팡에 가면 ‘코로나에 또 안 걸린다는 보장이 없’기 때문이다. ‘작업 환경이 그렇’기 때문이다. ‘쿠팡은 코로나 사태 때 언제 걸려도 걸릴 거’였고 ‘언제 터져도 터질 게 그때 터진 거’였기 때문이다. 


앞으로 ‘한 번 더 걸렸다 그러면’ 다음을 기약하기 어렵다고 판단한다. 쿠팡이 코로나 확진자가 나오기 전에 한 일이라곤 ‘출근할 때 입구에서 열 검사하고 손 세정제 조금씩 짜주’는 게 다였다. ‘한 게 없’기에 효과가 없었다면, 확진자가 나온 후 역시도 ‘일을 연장시키고’ 다음날 ‘조기 퇴근시키고 그거’가 전부였다. 

 

사진 1. 지난 7월 23일 잠실 쿠팡본사 앞에서 ‘쿠팡은 코로나19 피해자 외면 그만하고 면담에 나와 사과하라!’ 기자회견 후. ‘쿠팡발 코로나19 피해자모임’ 대표와 ‘쿠팡발 코로나19 피해자 지원대책위원회’ 대표가 쿠팡 측에 입장문을 전달하려 하고 있다. 미리 알렸는데도 입장문 전달에 기다림의 시간이 필요했다. 입장문을 받을 ‘사람은 없는’ 쿠팡 본사. 천장의 불빛만 휘황하다. 권유하다

 

복귀의 불안은 불신에서 기인한다. 잠깐 쉴 수도 없는 곳, 잠시 앉을 수도 없는 곳, 화장실도 이름 쓰고 가야 하는 곳, 동료하고도 얘기할 수 없지만 내가 할 이야기도 제대로 할 수 없는 곳. 노동자를 사람으로 대하는 것이 아니라 갈아 넣어 물량만 채우면 되는 도구로 보는 그곳에 위험한 시기 다시 돌아가는 것은 어쩌면. 만용일 수 있겠다. 


현장 노동자의 증언으로도 하는 척만 하다가 시늉만 하다가 원래대로 돌아간 쿠팡을 확인할 수 있다. ‘기기는 소독하셨습니까?’ 문구만 뜰 뿐이다. 소독은 없고 클릭만 있다. 바쁘기 때문이다. 시간은 주어지지 않고 쏟아지는 물량과 쏟아지는 재촉의 악다구니에 쫓길 뿐이다. 한 번 비치한 보여주기식 소독 티슈는 떨어진 지 오래. “없어요?” 물으면 “없어요!”가 답일 뿐이다. 와처는 거리두기의 안전을 강제하는 게 아니라 누가 잠시 휴식이라도 취할까 감시하는 노릇에 머문다.

누가 뭐래도 마감이 사람보다 중요한 곳, 로켓 배송을 위해서 번개 노동을 강제할 따름인 쿠팡이 어디 가겠는가.

 

“죽을 수도 있는 감염병에 걸려 입원했으면 문자 한 통이라도. 어쨌든 치료 잘 받고 건강하게 되길 바란다, 힘내시라 이런 문자라도 보내야 하는 거죠.”


“위로 전화도 없었어요. 그게 더 괘씸해요. 오히려 사태가 그런데 마지막 날 오후 7시 반에 조기 퇴근한 날, 좁은데 몇백 명 모아놓고. 오히려 그게 코로나 확산을 더 부추긴 거예요... 이건 쿠팡의 욕심 때문에 그런 건데. 확진자가 나왔을 때 즉시 폐쇄했어야죠. 감염병 코로나에 이게 말이 되는 건가요.”


“쿠팡이 보건당국 핑계를 대도 확진자들은 쿠팡 너네를 위해서 일했으니까 적절하고 합리적인 보상과 위로를 해주고, 그거에 대한 구상권은 보건소든 다른 곳에 신청해서 법적으로 그쪽에서 다퉈야지, 너네를 위해 일한 사람을 내팽개치고 아무것도 안 해주는 게 맞냐, 그따위 소리나 하면 되냐는 생각이에요.”


배움 짧은 노동자의 상식적인 요구다. 미국까지 가서 공부하고 미국 국적을 취득한, 배운 사람 ‘선진 경영인’ 김범석 대표의 답을 국정감사에서 듣고 싶다. 


쿠팡에서 일했다는 이유만으로 사회적 낙인이 찍힌 노동자들은 ‘정신적인 육체적인 피해가 어마어마’하지만 쿠팡은 코로나 특수를 누리고 있을 뿐이다. 집단감염 피해를 책임지지 않고 그 피해자들이 뿔뿔이 흩어진 자리에 새 인력을 구해 채우면 그만인, 사람을 쓰다가 버리는 쿠팡은 제2의 소록도가 아닐까.

쿠팡의 노동자들은 인정도 사과도 보상도 없는 쿠팡으로, 대책 없음이 대책이요 무대응이 대응인 쿠팡으로, 한 번 더 죽임을 당하는 고통에 처해있다. 

 

사진 2. 쿠팡 근로자 모임 뭉쳐야 산다. ‘쿠근뭉’의 부천신선물류센터 앞 선전전 권유하다

 


김우
권유하다 편집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