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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여적] 권유하다(2020.02.05) | 알림

  • 운영스탭
  • 2020-02-10 16: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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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회사엔 숫자 칸막이가 있다. 직장보육시설을 둬야 할 기준은 상시근로자 500인, 대기업은 300인, 주 52시간제는 올해 50인 중소기업까지 지켜야 한다. 노동위원회에 가면 가장 먼저 묻는 숫자가 ‘5인’이다. 근로기준법의 보호망이 적용되는 갈림길인 까닭이다. 지금껏 사업주는 “지불능력이 모자란다”고, 정부는 “근로감독 부담이 크다”고 법 적용에 난색을 표해 왔다. 그 속에서 5인 미만 사업장 노동자는 계속 늘어 지난해 580만명을 찍었다. 노동자 네 명 중 한 명이고, 도소매·음식·숙박·부동산업은 대다수를 차지한다. 정규직·계약직과 또 다른 ‘3등시민’을 위해 온라인 플랫폼 ‘권리찾기 유니온’(www.unioncraft.kr)이 5일 개통됐다. ‘권유하다’로 부르는 당사자 참여 운동이다. 


5인 미만 사업장은 연차·생리휴가와 연장근로·야간·휴일수당이 법적 보호를 받지 못한다. 언제든지 해고가 가능하고, 노동시간도 사업주 맘대로 정할 수 있다. 노조조직률은 0.1%에 못미친다. 노동자 권리가 사업주 선의에 맡겨진 셈이다. 지난해 말 ‘권유하다’ 실태 조사에서도 57%는 연차휴가를, 62%는 시간외수당을, 10명 중 1명은 최저임금을 받지 못하고 있었다. 평균 월급은 138만원, 10인 이상 사업장 급여 279만원의 절반 수준이다. 임금·복지도, 노동법도 질적으로 다른 차별선이 5인에 쳐 있는 셈이다. 


‘권유하다’는 한상균 전 민주노총 위원장이 감옥에서 구상했다고 한다. “1년에도 수십번 해고당한다”는 사람을 만나 ‘노사교섭’ ‘조합원’이란 말조차 사치인 작은 사업장을 봤다고 했다. 그래서 잡은 슬로건은 ‘세상과의 직접 교섭’이다. 당사자들의 당연한 요구를 모으고 알리겠다는 것이다. 온라인 플랫폼은 ‘위장 사업장’의 익명 신고부터 받는다. 5인 이상 회사인데 4명만 근로계약하고 나머진 프리랜서·알바로 돌리는 ‘못된 사업주’의 근로감독을 요구하고, 시민고발인단도 모집하겠다는 구상이다. 50년 전 불꽃에 휩싸인 전태일 열사는 평화시장을 달리며 “근로기준법을 준수하라” “우리는 기계가 아니다” “일요일은 쉬게 하라”고 외쳤다. 지금도 ‘작은 전태일’은 도처에 많다. 그 낮은 곳을 주시하는 ‘권유하다’, 참 이름 잘 정했다.



이기수 경향신문 논설위원

2020.02.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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