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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민발언대] #일하는사람_모두의권리 : ④신정욱(대학원생) | 알림

  • 초코
  • 2020-04-13 10:03
  • 19,304회

*4월 8일, <#일하는사람_모두의권리 진짜뉴스 시민발언대>에서 발언해주신 분들의 소중한 이야기를 세상에 공유하기 위해 그 내용을 기록했습니다. 노동자임을 인정받지 못하는 사람들. 교수와의 ‘갑·을 관계’에서 자신의 권리를 말하기 어려운, 일하는 사람들. 대학원생입니다. 네 번째 발언은 대학원생이신 신정욱님의 이야기입니다 ...<권유하다> 



모 대학에서 석사과정을 수료한 대학원생 신정욱이라고 합니다. 저는 오늘 사회적으로 보호받지 못하는 대학원생의 노동, 특히 조교의 노동에 관하여 이야기하려 합니다.


전국의 대학원생 수가 33만 명이라고 합니다. 직장생활을 하면서 대학원에 다니는 경우를 제외하면, 전일제 대학원생의 수는 10만 명에서 15만 명 정도입니다. 굉장한 숫자죠. 이렇게 많은 대학원생이 인터넷에서 스스로 ‘노예’라고 자조하는 글들이 많이 떠돌아다녔습니다.


그 중에 특히 잘 알려진 농담이 있습니다. 어느 과학자가 각계각층의 사람을 모아 ‘코끼리를 냉장고에 넣는 방법’을 물었습니다. 교수들이 하는 말은, “조교들에게 시킨다.” 이런 농담입니다. 그러나 마냥 농담이기만 한 게 아닌 실제 상황이기도 합니다.


몇 년 전, 모 대학 교수가 조교에게 8만 장의 스캔을 지시한 사건이 있었습니다. 우리는 이 사건을 ‘팔만대장경 스캔노예 사건’이라 부릅니다. 조금 더 전에는 교수가 대학원생을 실험실에 가두다시피 하고 가혹행위를 저지른 사건도 있었습니다. 이 사건을 우리는 ‘인분 교수 사건’이라 부릅니다. 두 사건의 피해자들은 모두 대학원생 조교였습니다.


대학원생 조교의 처우에 관하여 별도의 급여나 근무시간을 정하지 않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렇다보니 온갖 종류의 잡일에 대학원생 조교가 동원됩니다. 새벽에 교수가 급작스럽게 호출하면 그리로 달려가야 합니다. 교수 자녀의 방학숙제, 등·하원에 동원되는 경우도 있습니다.


이런 사건들은 사회적으로 이슈화가 되었습니다. 그럼 이제는 사라졌을까요? 아닙니다. 근본적인, 제도적인 결함이 해결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코로나19 때문에 전 세계가 난리입니다. 물론 대학도 난리입니다. 사회적 거리두기로 온라인 강의가 전면화되고 있습니다. 학생들의 이야기, 교수들의 이야기는 조명이 많이 됩니다. 그런데 대학원생 조교들의 이야기는 잘 알려져 있지 않습니다.


온라인 강의가 전면화되는 국면에서 조교들의 업무는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했습니다. 이유가 뻔히 예상되지 않나요? 온라인 강의라는 방식이 누군가에게는 ‘코끼리를 냉장고에 넣는’ 방식과 비슷할 겁니다. 그럼 교수들이 누구를 찾을까요? 조교들을 찾습니다. 그러니 업무량이 폭증하는 것이지요.


정부가 만든 온라인 강의 관련 가이드라인이 있습니다. 그 가이드라인에는 학생들과 강사들에 관한 내용은 들어있지만, 행정보조를 하는 조교들에 관한 내용은 빠져있습니다. 이렇다보니 대학과 학과의 사정에 따라 조교들의 업무는 고무줄처럼 늘어나고 있습니다.


한 가지 문제가 더 있습니다. 대학이 재정적으로 어려울 때 가장 먼저 ‘정리’하는 대상이 학생 조교라는 점입니다. 대학원생 조교들은 노동기본권을 보장받지 못합니다. 대학은 그때그때 필요에 따라서 ‘다음 학기부터는 정원이 줄어든다’라는 식으로 쉽게 이야기합니다.


이미 이런 방식으로 대다수 대학에서 대학원생 조교 감축이 있었습니다. 남아있는 조교는 이미 엄청난 노동 강도에 시달리는 중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코로나19 정국이 도래하니, 주변 조교들은 “정말 미칠 노릇이다”라고 말합니다.


사회적 거리두기가 실천되고 있습니다. 그러나 대다수의 조교는 학교로 출근을 합니다. 이들의 안전문제는 잘 조명되지 않고 있습니다. 저는 대학원생을 노동자로 대우하지 않는 제도에 근본적으로 문제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대학도 마찬가지입니다. 대학은 철저히, 대학원생 조교들을 학생이라고 우깁니다. 그런데 자기들이 필요할 때에는 노동자로서의 의무를 지킬 것을 대학원생 조교에게 요구합니다. 대학원생 조교들은 상당한 노동을 하고 있음에도 스스로를 노동자라고 부르지 못하는 이상한 신세입니다.


부당한 업무지시를 받아도, 학기 시작 며칠 전에 ‘나오지 말아라’라는 통보를 받아도, 대학원생 조교들이 이를 거부할 수 있는 법적인 권리가 없습니다. 그렇기에 저임금과 장시간 노동에 시달리고 ‘갑질’에 노출되어 있습니다. 지금 코로나19 국면에서 조교들이 업무 과중 등 어떠한 희생을 강요받는 것도 바로 이 때문일 것입니다.


해답은 아주 단순합니다. 노동하는 모든 사람을 노동자로 대우하면 됩니다. 마찬가지로 우리 역시 학생이기만 한 게 아니라, ‘학생 노동자’라고 보면 됩니다. 관련 법·제도 개선은 물론, 사회적 인식개선도 필요합니다.


끝으로, 교수님들에게도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저희는 학술공동체의 동료이자, 대학이라는 사업장에서 일하는 동등한 위치의 노동자라고 생각합니다. 제발 학생들에게 사장처럼 굴지 말아주시길 부탁드립니다. 교수님들이 노동자이듯이 노동하는 학생들도 노동자입니다. 그렇게 대우해주십시오. 이 지점에서 연대와 상생의 씨앗이 싹틀 수 있고, 그렇게 되어야, 반복되는 교수 ‘갑질’의 연쇄를 끊을 수 있을 것입니다.


2017년 말에 대학원생들이 노동조합을 만들어 활동하고 있습니다. 많은 응원을 부탁드립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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