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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마디

  • iron
  • 2020-05-25 17:51
  • 4,326회

누구나 잊을 수 없는 한마디가 있지 않을까. 가슴에 새길 것까진 아니더라도 그냥 기억 속에 남아있는 말. 당시엔 기억될지 알지도 못한 말 말이다. 달리 다짐과 노력이 없다면 기억이란 녀석은 내 선택의 영역을 벗어난 그물망에 걸려 건져지곤 하는 거니까.

 

아홉 살에 서산에서 서울로 이사 왔다. 태어나 자란 마을에서 떠나오는 일, 정든 이들과 헤어지는 일은 몹시도 서운한 일이었다. 그나마 나를 달래준 건 아파트로 이사 간다는 것이었다.

 

아파트. 난 도착하면 빨간 양탄자가 깔려있을 계단 위에 올라 천천히 몸을 굴려 내려올 생각을 했다. 떼굴떼굴 굴러 내려와도 다치지 않을 안락한 계단을 상상했다. 도착하니 양탄자는커녕 금이 쩍쩍 가 있는 낡은 회색 건물엔 회색 비둘기와 그 똥만 가득했다.

 

서산에서 살 때는 부유함과 가난함을 따로 알지 못했다. 그냥 항남이네 집에는 그네가 있구나, 그럼 그 집에 놀러 가서 타야겠구나, 항남이는 좋겠구나. 인이네는 구멍가게를 하는구나, 계산 안 하고 집어 먹을 수도 있겠구나, 인이는 좋겠구나. 정도로 생각했다.

 

서산에 살던 집을 팔아서 그 돈으로 서울 사대문 안에서 집을 구하겠다는 아버지의 생각에 맞추려니 좁고 오래되고 낡은 곳일 수밖에 없었다는 건 나중에 알았다.

 

한 층에 여섯 집이 살았다. 밤무대 가수도 살고, 학원 강사도 살고 그랬다. 이렇게 말하면 미안하지만 현실 속에선 바람난 아저씨의 세컨드에 그칠 수밖에 없는 아줌마와 그 아이도 살았다. 화장실은 집 안에 있지 않고 복도 가운데 공간에 여섯 개가 모여 있었다. 각기 자물쇠를 채우고 열쇠로 열어 사용했다. 뒤쪽엔 연탄 광이 또 여섯 개. 아침이면 누가 우리집 연탄 훔쳐 갔다며 목소리를 높이는 일이 흔하곤 했다. 소설책에 나오는 달동네 풍경, 딱 그랬다.

 

화장실 입구 맞은편엔 쓰레기 봉지를 버리는 문이 있었다. 아래로 아래로 떨어져 공동 집하장에 모이는 구조였다. 그 앞에서 왔다리 갔다리 하고 있었다. 동생이 화장실을 사용하고 있어서였다. 4층으로 올라가려던 남자 어른 한 명이 빙긋 웃으며 상황을 알은 체했다.

 

너 똥 마렵구나.”

 

그 한 마디에 쓰레기통 문이 열리고 내가 아래로 아래로 떨어지는 느낌이었다. 아니라고 부정할 수 없는 난처함. 화장실이 집 안에만 있었어도 내가 이 사람에게 이런 말을 들을 일은 없을 텐데 하는 안타까움이 교차했다.

 

지역 공무원 생활을 하며 '기러기 아빠'를 자처한 아버지가 주말에 서울로 오실 때가 있었다. 서울역이라고 전화가 오면 집 근처 버스 정거장으로 반가운 마중을 나갔다. 아버지가 오시면 엄마는 정육점에 가서 쇠고기 반의 반 근을 사 오라고 했다.

 

반의 반 근? 그걸 누구 코에 붙이려고.”

 

정육점 주인의 구시렁거리는 말에 얼굴까지 화끈거렸을까. 암튼 부끄러웠다. 한 근도 아니고 반 근도 아니고 반의 반 근을 잘라 파는 게 귀찮기도 하고 크게 이문이 남는 일도 아니었을 거다. 그래도 심부름 온 어린아이 앞에서 들으라는 듯이 할 소린 아니라고 생각한다.

 

중학교에 진학해선 수업 시간에 한 선생님이 **아파트에 사는 사람은 손을 들라고 했다. 나를 포함해 두엇이 손을 들었다.

 

그 아파트에 친구가 살아서 갔는데. 거긴 사람 살 곳이 못 되더라.”

 

연탄을 때며 살아가는 이야기며 비좁음에 대한 이야기며 여러 이야기가 줄줄이 이어졌다. 왜 그 이야기 전에 아이들에게 손을 들으라고 했는지는 아직도 미스터리다. 당사자가 듣고 상처받을까 봐 신경쓰느라 물은 건 아니었다. 손을 든 아이들 앞에서 아랑곳없이 하고픈 이야기를 자유롭게 풀어놓았으니까.

 

, 어른들도 완성된 존재가 아니구나. 많이 부족한 존재구나.’ 하는 깨달음을 준 한마디들. 반면교사로 나는 어떤 어른이 되고 싶은가 하는 자문을 준 한마디들. 귀중한 한마디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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