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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섭거나 혹은 미안하거나

  • iron
  • 2020-10-23 18:11
  • 3,104회

내게 비슷하지만, 결이 다른 두 가지 이야기가 있다.

 

하나. 신혼 무렵의 일이다. 여름이었고 어둑한 시간이었다. 전철역에서 내려서 집으로 가고 있었다. 문득 귀에 거슬리는 소리가 인지됐다. 짧지않은 거리 오가는 숱한 발걸음 속에서도 발을 조금 끌면서 걷는 소리 하나가 꾸준히 규칙적으로 들려왔다

긴가민가 싶어 횡단보도에서 조금 머리를 썼다. 길을 건너다 신발 끈을 묶는 척 몸을 굽히고 시간을 지체했다. 당연히 모두가 나를 앞서 길을 건넜다. 다들 오른쪽으로 가는 걸 확인하고 나 혼자 왼쪽 길로 접어들었는데. 잠시 후 내 걸음 뒤로 아까의 그 소리가 다시 뒤따랐다.

 

이대로 집까지 가는 건 위험하다 싶어서 골목에 접어들었을 때 근처 작은 구멍가게로 들어갔다. 시간을 충분히 두고 가게를 둘러보았다. 아무것도 안 사고 나올 수는 없어서 참 크래커라는 과자를 집어 들고 계산을 마쳤다.

가게에서 나왔는데 파라솔 그늘 밑에 한 사람이 숨어 서 있었다. '이젠 갔겠지 하고, 뒤를 돌아보면 아직도 그대는 그 자리' '암연'이란 노래의 가사처럼 말이다. 

 

얼굴은 어둠 속에 있지만, 반바지와 정강이와 갈색 샌들이 보였다. 발가락이 보이고 발등에 고정하는 끈이 있는 스포츠 샌들. 엄지발가락에 난 털이 생생하게 도드라져 보였다. 숨을 안으로 삼키고 가게 안으로 다시 들어갔다.

아저씨, 이상한 사람이 따라와서요. 도와주세요.”

가게 아저씨를 대동하고 나왔더니 파라솔 밑 남자는 사라지고 없었다. 그제야 가슴을 쓸어내리며 집으로 갔다.

 

너무 늦은 시간이어서였을까, 러닝셔츠 스타일의 민소매 옷이 노출이 심한 것이었을까, 술을 마셔 얼굴이 발개서였을까... 세상이 피해자를 탓하듯 어느새 자책을 하는 나를 느끼던 밤이었다.

 

이상한 사람을 알아차리고 피해갈 수 있는 건 여러 일을 겪으며 감이라는 게, 촉이라는 게 생겨난 덕분 아닐까 싶다.

중학교 때 한 남학생이 따라왔었다. 내가 길에서 우연히 친구를 만나 이야기를 나누면 전봇대에 기대서 있었다. 내가 다시 걷기 시작하면 뒤에서 걸었다. 이상했지만 그래도 설마하는 생각이었다.

 

아무도 없는 부잣집 동네 넓은 골목에 들어서자 뒤에서 걸어오던 걸음이 빨라졌다. 바짓가랑이 스치는 소리가 사삭 사삭들리는가 싶더니 어느새 바로 내 뒤에 왔고. 내가 돌아서는 것과 동시에 내 멱살을 잡았다.

엄마야~~~”

내가 그렇게 큰 소리를 낼 수 있는 능력자인지 처음 알았다. 너무 놀라면 아무 말도 안 나오는 경우도 있다는데 다행히 목소리가 터져 나왔다.

 

마침 부잣집 대문 하나가 열리며 일하는 사람이 쓰레기를 버리러 나왔고. 남학생은 학생 가방을 옆구리에 끼고 교련복 바짓단이 닳도록 빠르게 달려 도망갔다.

왜 멱살을 잡았는지 의문이었는데 나중에 잡지를 보니 치한이 상대방을 제압하는 방법이었다. 그럴 땐 이렇게 빠져나와야 한다는 호신술 소개 내용. 남학생의 서툴렀지만 분명했던 의도를 비로소 알 수 있었다.

 

코 앞에서 본 얼굴. 한동안 코 밑에 수염이 듬성듬성 나고 뺨에 여드름이 불긋불긋한, 2차 성징기 남학생 전체가 싫기도 했다. 귀여운 병아리에서 흉한 중닭이 된 바로 그 느낌.

 

다른 하나. 결혼 전이었던 듯싶다. 버스에서 내려 집으로 가는, 주로 혼자 걷게 되는 한적한 길이었다. 뒤에서 걸어오는 한 사람이 의식 돼서 걸음을 천천히 걸어 그 사람이 앞서가게 했다.

갈색 코르듀이 바지를 입고 검은 봉지를 든 사람이었다. 충분히 떨어져 걸었기에 편안한 마음으로 골목에 접어들었다가 하고 놀랐다.

 

달빛이었는지 가로등 불빛이었는지. 희미한 빛 아래 담벼락에 붙어선 사람이 보였기 때문이었다. 하체만 보였지만 분명 코르듀이 바지와 검은 봉지였다.

내가 잠시 숨을 멈추고 붙박이처럼 서 있는 1~2초 사이에 수줍은 소리가 들려왔다. ... ... 쪼올...

 

담벼락 어둠에 숨어있던 이의 하반신은 앞모습이 아니라 뒷모습이었던 모양이었다. 담벼락에 오줌을 누고 있다가 인기척이 들리고 그 사람이 멈춰 서 자신을 뚫어지게 바라본다고 생각하니 시원하게 오줌 줄기를 뽑지 못하고, 그렇다고 멈출 수도 없는 상황이었던 모양이었다. '멈출 수가 없었어, 그땐' '늪'이란 노래의 가사처럼 말이다.

미안한 마음에 경사길을 다다다다 달려 내려가 집으로 들어갔다.

 

몇 년 전 누군가 뒤에서 달려서 나를 앞질러 갔는데. 공동체 주택 앞에 다다르니 한 층 위에 사는, 작은 눈이라는 별명의 한 아빠였다. 엘리베이터실 비번을 누르는 그이에게 웃으며 물었다.

작은 눈이, 배탈 났어요? 왜 달려왔어요?”

어두워서 느리가 여학생인 줄 알았어요. 뒤에서 계속 걸어오면 따라오는 줄 알고 무서워할까 봐 앞질러 달린 거예요.”

 

이런 따듯한 배려라니. 세상의 모든 남성이 더도 말고 덜도 말고 작은 눈이만 같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세상은 그렇지 않아서... '얼마만큼 나 더 살아야' 방심했다가 무섭거나 혹은 경계했다가 미안하거나 하는 상황을 벗어날 수 있는걸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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