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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격유형 검사로 말하는 나

  • iron
  • 2020-09-15 15:46
  • 3,948회

성격유형 검사를 하면 재밌다. 성미산 마을살이를 하며 여러 유형 검사를 받을 기회가 많았다. 어울려 살아가며 나와 이웃을 이해하는 수단의 하나였다.

 

다섯 개 영역의 검사를 하고 수치별 점을 찍어 별을 만드는 걸 한 적이 있다. 내 별은 찌그러진 별이었다.

생존 지수가 매우 낮다. 미래를 대비해서 보험을 든다거나 적금을 붓는다거나 하는 일이 없다. 딴에는 아직 오지 않은 미래를 미리 걱정해 현재를 저당 잡히지 않는다는 생각.

자유 지수가 매우 높다. 말 그대로 자유로워 지고자 하는 의지다. 이렇게 생존지수가 낮고 자유의지가 높은 경우 백수의 확률이 높아진다고.

동일 지수가 매우 낮다. 내 부모가 내 남편이 내 자식이 어떤 직업이고 어떤 직위이고 어느 대학에 다니고 하는 것이 중요하지 않다. 내가 모시는 상사가 어쩌고 하는 것으로 목에 힘줄 일도 없다. 나는 나다.

퇴행 지수는 또 매우 높다. 과거 지향이다. 추억이 보물이다. 옷도 내 또래가 입는 스타일이 아니라 아동복에서 치수 큰 걸 고르기도 할 정도. 유아복에서 고를 수 없음이 한이다.

 

다른 하나는 기억나지 않는다. 이런 식으로 매우 높고 매우 낮은 수치를 연결하니 별은 자연스레 일그러졌다.

모임에서 부부의 수치를 비교하는 숙제가 있어서 출근 전 화장실에 있는 남편에게도 검사지를 시험지처럼 건넸다.

근데 남편은 정말 똑 고르게 다섯 개의 점이 찍혔다. 특이하다는 소리 듣는 나와 평범이가 별명인 남편의 차이라고 받아들여야 할지.

 

어쩌면 스포츠에서 어느 한 팀을 응원하는 일이 매력 없는 것도 동일시 지수가 낮아서일지도 모르겠다.

농구 경기가 있다. 어느 팀 점수가 75이고 다른 팀이 27이라 치자. 한 팀의 환희가 반대 팀의 슬픔일 텐데 기왕 이기고 있는 팀이 더 높은 점수를 올리라고 응원하는 게 이해되지 않는다. 막상막하도 아니고 한쪽이 묵사발이 되는 경기를 보는 건 마음이 아프다.

스포츠 경기를 볼 일도, 마음 다해 어느 한 쪽을 응원할 일도 없다. 종이로 된 신문을 볼 때 스포츠면이 제일 좋기는 했다. 통으로 읽지 않고 넘어갈 수 있어서였다.

 

어릴 적 아버지가 텔레비전으로 권투경기를 보면 나는 이불을 둘러쓰고 울었다.

이미 많이 맞아서 눈두덩이 붓고 찢긴 사람을 더 때리라고 어퍼컷, 어퍼컷, , 을 외치며 텔레비전에 빨려 들어갈 듯 엉덩이 들썩 앉은걸음으로 화면 앞에 다가간 아버지, 몰입의 주먹을 휘두르는 아버지의 모습이 나를 울게 했다. 아마 승리자에 감정이입 열중한 아버지는 모르셨을 테지만.

 

엠비티아이(MBTI), 디스크(DISC), 에니어그램, 타로 등 여러 도구로도 나를 살펴볼 수 있었다. 엠비티아이 검사는 내향형(I)/ 외향형(E), 감각형(S)/ 직관형(N), 사고형(T)/ 감정형(F), 인식형(J)/ 판단형(P)으로 구분한다.

 

나는 ENFP. 외향이고 직관을 사용하고 느끼고 즉흥적인 타입이다.

내성적 숫자와 외향적 숫자가 동수로 나와서 딱 중간이었다. 동양인은 내성적 유형이 많아서 동수일 경우 외향으로 분류한다는 안내에 따라 외향 지수 0인 외향형으로 분류됐다.

신기한 건 ENFP는 외향이되 혼자 있는 시간을 꼭 필요로 하는 외향. 내 성향과 일치한다.

 

나와 정반대인 성향은 ISTJ인데 내성적이고 경험에 근거하고 생각하며 계획적인 유형이다.

검사를 이끌어주는 선생님이 해외여행을 계획하고 발표하라는 과제를 주었다. ENFP 테이블과 ISTJ 테이블을 관찰하는 것도 흥미진진했다.

 

우리 테이블은 갈 곳이며 준비물이며 하고픈 걸 정리하는 데 시간이 얼마 걸리지 않았다. 발표할 전지 이곳저곳에 각자의 바람 등을 적어 넣었다.

여행 전 만날 가상의 날짜까지 잡으니 준비는 다 끝났고, 벌써 마음은 여행지에 가 있었다.

 

ISTJ 테이블은 전지부터 접었다. 줄을 맞추어 매직으로 쓰기 편하게 하는 사전 작업이었다. 각을 잡고 치밀 꼼꼼 계획을 세우는 숙의가 길었다.

정해져 있는 시간이 끝났는데도 여행 준비는 절반도 채 이루어지지 않았다.

 

디스크 성격유형 검사 때 인상적이었던 건 내가 속한 유형이 좋아하는 사자성어가 열 개 남짓 제시됐는데 그중에 새옹지마가 딱 들어있던 거다.

일희일비할 것 없는 세상사에 대한 나름의 달관을 담은 내 인생 사자성어가 네 유형은 이런 거 좋아하지하며 열거한 사자성어 속에 들어있으니 기분이 묘했다.

 

에니어그램은 장형(8, 9, 1), 가슴형(2, 3, 4), 머리형(5, 6, 7)으로 분류한다. 나는 거의 모든 항목 체크가 가슴형에서 이루어졌다.

번호는 이상주의자요 보헤미안인 4번이었다. ‘의미가 바로 내 삶을 이끄는 동인이다.

 

머리형, 가슴형, 장형의 범주를 구분하는 간단 테스트. 일테면 건물에 불이 났다. 머리형은 신고하고 어떻게 탈출하면 좋을지를 생각한다. 가슴형은 사람들을 진정시킨다. 장형은 이미 움직이고 있다. 불이 난 건물에서 뛰어내리는 사람들은 대개 장형이라고 한다.

 

또 하나 예를 든다면 파티에서 아이가 금고에 갇혔다. 머리형은 신고하고 어떻게 꺼내줄지 생각한다. 가슴형은 금고 앞에 앉아서 아이를 달랜다. 장형은 도끼를 들고 온다.

 

예를 하나 더 든다면 공돈이 생겼다. 머리형은 무얼 할지 생각하며 서랍에 넣든 은행에 넣든 일단 돈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 가슴형은 바로 쓰기 시작한다. 장형은 골든벨을 울린다, 이때 내가 쏜다의 내가가 중요하다.

 

생각나는 일화. 보물찾기에서 보물 한 번 찾는 일도 없는 내가 살다가 뭔가에 당첨돼서 50만 원이 나왔다.

내가 한 건 친구들에게 이런 일이 있다고 알리면서 신나게 밥과 술을 사는 일이었다. 멀리 있는 친구에겐 생협에서 생활재를 사서 택배로 부쳐줬다.

사용한 돈이 받은 돈을 훌쩍 넘어서고 나서야 당첨의 기쁨 나눔은 마무리됐다.

 

덧붙이면 타로는 5번 교황 카드. 명예를 중시하고 조언자가 될 관찰력과 직관력이 있는 사람을 뜻한다. 자유의지 충만하되 반듯반듯 바른생활을 할 수밖에 없다.

 

별자리는 황소자리인데 별자리 공부를 하던 이가 내 별자리가 영혼의 영역에 몰려있는 게 신기하다고 했다. 하나가 들어 있기도 어려운데 네다섯 개가 몰려있다고.

영혼이 아픈 사람으로 병원에 있거나 그렇지 않다면 세상의 아픈 사람들을 치유할 수 있는 능력의 별자리였다.

 

황소자리는 돈을 잘 모을 수 있는 별자리예요.”

저는 한 번도 은행 잔고 빵원을 넘어선 적이 없는데요.”

... 그럼 다른 뭐라도 모으고 있을 텐데요.”

“... 아, 거북이 모형을 모으고 있어요.”

 

마을에서 별칭이 느리라는 것에 걸맞게 거북이의 느린 걸음에 친화감을 느껴서 한 개 두 개 모아온 게 장식장으로 하나이긴 하다.

무언가를 모으는 걸 중단한 지는 오래다. 삶의 모드를 모으기보다 무어라도 나누기로 전환했기 때문이다.

 

그래도 여전히 꾸준히 모으고 있는 게 하나 있긴 한 듯하다. 바로 좋은 사람들이다. 사람은 언제나 도구가 아니라 목적. 마음 열어 흔쾌히 만나고 기꺼이 관계 맺는다.

나를 믿고, 좋아해 주고, 지지해 주는 사람들을 만나는 건 내 삶 기쁨의 원천이다. ... 꼭 술을 같이 마셔서 그런 것만은 아니다.

 

 

 

 

댓글목록

iron님의 댓글

iron 작성일

킬리만자로...님, 그 조합은 해산합니다~ 해맑게.

킬리만자로의표범님의 댓글

킬리만자로… 작성일

착한 평범이와 욕심없는 느리의 조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