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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웠느냐

  • iron
  • 2020-09-10 16:12
  • 3,853회

몇 년 전 점을 보러 간 적이 있다. 살면서 점집에 가는 일은 전에도 없었고 앞으로도 없을 듯한데 단 한 번의 경험.

 

월에 한 번씩 술을 마시는 모임. 나랑 나보다 3살 많은 봄봄’, 6살 많은 에이미’, 9살 많은 박짱이 구성원.

건설사 대표를 맡은 봄봄이 생태건축의 보람은 크지만, 빚이 많아 고민이었다. 가족뿐만 아니라 직원들을 챙겨야 하는 입장에서 불어나는 빚은 큰 걱정이었다. 물어물어 용하다는 점집을 찾아 군산에까지 갔다고.

 

군산 할머니가 이제 곧 사무실을 옮기게 될 텐데 이러저러한 곳으로 옮겨라 하고 말했다. 사무실 계약 기간은 한참 남았는데 하며 갸우뚱하고 돌아왔다. 며칠 뒤 건물주가 이만저만한 사정이 있으니 사무실을 비워달라고 요청했다.

동시성이 일어났었나 보다. 뭐 이런 식의 여러 일이 고스란히 할머니 말대로 일어났다. 다행인 건 그 이후 빚을 줄여나가고 있다는 거다.

 

술자리의 즉흥성. 봄봄의 이야기를 듣고 다음 달 정모는 12일 군산으로 잡았다. 술 모임답게 금요일 밤 도착해선 술을 3차까지 마시고. 자고. 다음 날 아침 군산 할머니네로 갔다.

울퉁불퉁 밭두렁을 지나 외따로 있는 평범한 농가. 일반 살림집에 작은 방 하나가 신당처럼 차려져 있었다.

 

세 사람이 순서대로 들어가 할머니를 만났다. 방 밖에 있으며 드문드문 들려오는 이야기에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왜 본인이 결정할 것을 낯선 3자에게 물어보지?’ 이 일을 계속할까요, 말까요. 이사를 할까요, 말까요. 모두 스스로 결정할 일인데 말이다.

 

마지막 순서인 내 차례. 생년월일시를 말하고 가만히 있었다. 할머니가 작은 상에 쌀을 조금 집어 던지고 무언가를 웅얼웅얼 읊더니 여러 이야기를 들려줬다.

주변에 사람들이 아주 많고, 당신에게 조언을 구하기도 할 텐데 그게 당신에게 맞는 것입니다.” “많이 바쁠 텐데 잘 살고 있는 것입니다. 그게 당신에게 맞는 것입니다.” “돈을 쌓아 두진 않지만 필요하면 들어오니 큰 어려움이 없을 것입니다.” ‘. 맞아요.’라고 답하게 되는 이런저런 이야기들.

 

강한 사주여서 몸에 칼이 한 번 들어올 일이 있다고 해서, 3 때 맹장 수술을 받았다고 했더니 잘 됐다고 했다.

끝으로 직관이 발달하셔서 다른 공부를 하지 않았다면 저처럼 철학을 하셨을 수도 있는데 제가 들려드린 이야기가 어떠셨는지 모르겠습니다.”라고 해서 여러 좋은 말씀 잘 들었습니다.” 하고 일어났다. ‘, 내가 자리를 깔 수도 있었단 말인가.’ 하면서.

 

마당에서 신발을 신고 밖으로 나왔더니. 먼저 나와 있던 세 사람에게 할머니가 저분은 크게 되실 분이니 주위에서 잘 밀어드리라고 당부했다고 했다. 우스개 소리 같은 말이지만 세 사람이 점심으로 정식을 쏘았다.

부적을 쓰라는 등 무리한 요구 일절 없이 복채는 3만 원이었고, 일행에게 비싼 점심을 얻어먹었으니 가성비 쏠쏠한 날이었다.

 

이후 사주를 공부하는 이가 내게 땅에서는 지진이 나는데 하늘에서는 천둥이 치는 사주라며 현실에 안주하지 않는 혁명가의 사주라고 한 적이 있다.

큰 인물이라는 것은 이름을 떨치거나 누군가의 위에 군림하는 사람이 아니라. 굽히지 않고 자신의 신념대로 살아가는 우리를 일컫는 말이라 여겨진다. 나는 사주대로 순리대로한 걸음 한 걸음 살아가고 있는 것이겠다.

 

여하튼 돌아와선 아무 생각 없이 지냈다. 설거지하다 문득 생각이 나서 고등학교 다니던 큰애에게 물었다.

어떤 사람이 엄마한테 너 횡단보도에서 자전거 사고 날 수 있다고 그랬는데 별일 없어?”

지난번에 사고 났지. 크게는 안 다쳤는데 자전거 다 찌그러지고. 나 요즘은 걸어서 학교 다니잖아.”

횡단보도에서 차와 부딪혔는데 다짜고짜 화를 내는 운전자에게 블랙박스를 확인하자고 했고, 오히려 차를 운전한 이의 과실이 드러나자 슬그머니 사라졌다는 이야기까지.

 

봐달라는 이야기도 안 했는데 군산 할머니가 큰애와 작은애 사주를 물어서 기억 못 하는 출생 시는 빼고 생년월일을 이야기했었다.

첫째는 어학 쪽에, 둘째는 예능 쪽에 재주가 있을 거라고 했는데 첫째는 지금 일본어를 공부하고, 둘째는 그림을 그리고 있다.

 

꿰어 맞춰보면 이야기는 더 있다. 군산 할머니가 남편 이야기를 하며 그 전에 내게 한 명의 남자가 더 있다고 했는데. 열아홉에 만나서 9년을 사귄 남편 외 다른 사람은 없다고 답했었다.

곰곰 생각해보니 내게 다른 한 명이 있었다. 이루지 못한 사랑으로 완성한 사랑, 첫사랑의 선배님이 있었다.

 

술자리에서 이런 이야기를 들은 내 친구가 자기도 군산 할머니를 찾아가고 싶대서 봄봄에게 연락했다.

근데 군산 할머니 연락처도, 주소도 모른단다. 그저 다른 사람 따라갔던 기억력에 의지해 찾아갈 뿐이라고.

해서 군산 할머니는 붉은 밭두렁 사이 외딴 농가 신비스러운 판타지처럼 남았다.

 

얼마 전 권유하다 후원전시회가 있었다. 나도 그림 한 점을 사서 응원의 마음을 담고 싶었는데 늘 그렇듯 통장 잔고는 없었다.

근데 집에 오니 편지가 와있었다. 정보보호 차원으로 전화번호는 알 수 없지만 서류 떼서 주소를 확인했다고, 내 명의로 되어있는 산의 나무를 팔라는 내용이었다.

아버지가 물려주신, 평당 공시지가 300원의 태백 땅. 팔아서 빚을 갚을 땅은 되지 않지만 50년 이상 수령의 잣나무 등이 자라고 있다.

나무를 팔고 새롭게 조림을 하면 그 차액으로 그림을 한 점 구매할 비용이 나올 수 있었다.

 

역시 돈은 없는데 해외여행을 계획했을 때. 협동조합에서 출자금 찾아갈 시점이니 계좌를 알려달라는 연락이 왔던 것처럼 맞춤형이다. 군산 할머니의 사주풀이처럼 말이다.

 

군산 할머니를 만났던 몇 년 전 나도 봄봄도 삼재였다. 나한텐 어떤 어려움이 있어도 귀인이 나타나 도와주니 아무 걱정 않으셔도 됩니다.”라고 얘기했다면 봄봄에겐 빤스를 태워라.’ 하고 일러주었다고.

그 이후 태웠냐고 물었더니 봄봄은 아니라고 답했지만. 군산 할머니 말이 맞는다면. 내 직관에봄봄은 태웠을 것만 같다.

댓글목록

지연님의 댓글

지연 작성일

알아봐주셔서 감사합니다

iron님의 댓글

iron 작성일

애석하네요. 안그래도 지인의 문의가 있어 알아봤는데... 연세가 86세라 기력이 쇠하셔서 2년 전부터 정리하셨다고 들었어요. 사주는 보지 않으셔서... 그저 고마운 마음에 할머니 얼굴 보고 인사 드리러 오시는 분들만 있대요.^^;;

지연님의 댓글

지연 작성일

마침 제가 일하느라 군산에 있는데..어딘지 얼추 알수 있을까요? 대략 설명해주시면 제가 좀 더 알아서 찾아가보고싶은데..